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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시집 소개] 《아주 커다란 잔에 맥주 마시기》-김은지

by young poet 2024. 8.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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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알라딘]

 

 

 

이번에 소개할 시집은 여름에 잘 어울리는 김은지 시인의 《아주 커다란 잔에 맥주 마시기》라는 시집입니다.

김은지 시인은 2016년 《실천문학》 신인상을 통해 등단했으며, 《고구마와 고마워는 두 글자나 같네》, 《여름 외투》 등 다양한 시집과 책을 써냈습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멈추고 싶은 순간, 그때 찾게 되는 한 잔의 맥주. 이 시집은 그런 일상 속의 소소한 행복과 여유를 담은 시집인 것 같았습니다. 

 

 

 

좋았던 시 소개에 앞서 시인의 말을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외로움이라는 한 단어로 표현되던 감정은
새로 나온 디바이스로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측정할 수 있게 되었다
디바이스는 
키링처럼 가방에 달고 다닐 수 있다

손에 꼭 쥐었다가 풀면

기기에게 추천받은
배영을 한다
얼마나 왔는지를 알기 위해 수영장 천장을 본다
나름의 표시들이 있다

잘 
가라고

-2024 여름
김은지-

 

감정의 기술화 같은 아이디어를 다루면서도, 현대인의 고립감과 그 속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를

탁월하게 표현한 '작가의 말'이라고 느껴졌습니다. 

 

 

 

 

좋았던 시를 몇 개 소개하자면 

배가 아플 때는 매실차를 마신다
더워서 어지러울 땐
수박 한 조각

과일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어쩌면

입술이 터진 뱃사람이 
오렌지의 말을 알아차렸듯

과일은 푸르고 붉게 익어가네
인간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담기에

약간 납작한 심장 모양의 과일을 쥐었을 때

허니골드망고
지친 내 마음을 달래주세요

말을 걸어 보는 것이
어쩌면

과일이 바지런히 익어가네
두 가지 색이 잘 섞이도록

「심장처럼 생긴 과일」

 

이 시는 과일을 통해 인간의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과정을 은유적으로 묘사한 작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시를 읽으며 느낀 점은 ‘자연과 인간의 상호작용’이 얼마나 깊고 본질적인지를 시적으로 표현했다는 것입니다. 특히, 과일을 단순한 음식이나 영양소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감정과 정신적인 치유까지 담당하는 존재로 바라보는 관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다음으로 소개할 시는

시를 읽을 한 사람을 생각한다
그 사람은
밤에 잠이 들길 기다리면서
기침이 나지 않기만을 바란다

그 사람은 좋은 소식도 많이 듣고 
착한 사람들과 충분히 시간을 보냈는지 모르겠지만
더울 때 토마토 빙수
같이
먹을 수 있게 되기만을 바란다

내 시를 읽을 누군가, 나 같은 독자 한 명
슬픈 일 마주하지 않기를
왜냐하면 그는
다른 통증들 때문에
제대로 울어줄 수 없기 때문에

사과와 관련된 비밀들
추천사 문체로 쓴 시
직접 레서판다를 본 기분
더워도 바깥에서 뛰어노는 아이들
스카치, 다 나으면 언제 어디서 마시고 싶은지

오늘은 
그를 위한 시를 써보려고

짧은 시가 끝날 때
눈을 감고 숨 들이마실 수 있기를
잠시
그를 위해서 이 세계에 있는 고요한 것
시에 하나씩 놓아 본다

「토마토 빙수」

 

이 시는 시를 읽을 독자에 대한 따뜻한 마음을 고스란히 전합니다. 시인이 염두에 두고 있는 독자는 신체적 혹은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으로 보이고, 시인은 그 독자가 위로받고 평안을 찾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 같았습니다. 시를 통해 독자가 고통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안식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시 전반에 깔려 있어 매우 감동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시는

봄이라고
나무들이 연두색을 시작했으니까 갑자기 좋은 문장이 튀
어나왔으니까 낯선 소리에 밑줄 긋기

겨울은 자꾸
원래대로 돌아오는 느낌을 주었지만 

하지도 않은 일을 벌써 반성하는 사람들이 있다
완벽하게 비어 있는 배드민턴 코트가 있다
아무래도 그건 긍정의 긍정적인 측면

땀이 흘렀고 너무나 작게 핀 꽃이 너무나 섬세해서

「뒷모습을 천천히 용기 낼 시간」

 

이 시는 봄의 시작과 그에 따른 감정의 변화를 담담하면서도 세심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시의 흐름은 연두색으로 물들어가는 나무들처럼 조용히 변화하는 자연의 모습과, 그 안에서 떠오르는 인간의 내면적 생각들을 병치하고 있습니다. 일상의 사소한 순간들을 통해 깊은 성찰을 이끌어내는 시인의 시선이 인상 깊었습니다. 

 

 

김은지 시인은 일상에서 쉽게 지나칠 수 있는 경험들을 깊이 있는 관찰과 독특한 표현으로 풀어냅니다.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언어와 감각적 이미지로 이루어져 있어, 시를 접하는 독자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는 깊은 사유와 감정의 여운이 남아 있어서 단순히 읽고 지나가는 시가 아니라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울림을 줍니다.

 

일상 속에서 잔잔하지만 깊은 의미를 찾고 싶은 독자들, 그리고 작고 평범한 것들 속에서 삶의 가치를 발견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시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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