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알라딘]
이번에 소개할 시집은 '현대문학 핀 시리즈'인 김상혁 시인의 《슬픔 비슷한 것은 눈물이 되지 않는 시간》이라는 시집입니다.
김상혁 시인은 2009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하였으며, 《우리 둘에게 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다만 이야기가 남았네》 등 시집을 써냈습니다.
이 시집은 감정의 미묘한 결을 섬세하게 드러내어주고, 일상 속에서 느껴지는 작은 감정의 움직임을 섬세하게 포착해서 그 감정들이 언어로 어떻게 변환되고, 또 어떻게 공감할 수 있는지가 시 속에 녹아 있는 시집 같았습니다.
인상 깊었던 시를 몇 편 소개하고자 합니다.
새를 연구하는 교수는 새를 사랑하는 학생과 새
를 사랑하지 않는 학생으로 우리를 구분한다. 새를
사랑하면 새 교수에게 사랑받는 제자가 될 수 있다.
어제 그 교수가 강의 도중 조류관찰용 녹음기를
틀었다.
거기서 문득 흘러나온 새 교수의 흐느낌으로 교
실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그는 얼굴을 붉히며 철새 도래지 해 질 녘의 눈
물 나게 아름다운 장관을 묘사해보지만…… 한번
터진 우리의 웃음을 그칠 줄 몰랐다.
그날 새 교수는 모래 목욕하는 새를 보여주었다.
땅 위에 지은 둥지를 보여주었다. 가장자리 효과
에 관하여 설명하였다.
하지만 도마뱀이 물로 세수를 하든 코끼리가 진
흙으로 도포를 하든 그런 것에 누가 관심이나 있단
말인가?
다 큰 어른이 새 떼를 관찰하다 질질 짜는 소리
만큼 우리 흥미를 끌 만한 것은 수업에 없었으므
로. 새 교수, '사람은…… 새를 본받아야 합니다!'
같은 말을 진지하게 해봤자 그게 무슨 소용이 있냔
말이지.
새를 사랑하고 연구하는 교수의 강의는 새의 아
름다움에 관하여 아무것도 가르치지 못했다. 새를
사랑하면 새 교수에게 사랑받는 제자가 될 수 있지
만 아무도 새 교수의 제자가 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새를 사랑하면 새 교수에게 사랑받는 제자가 될 수 있다」
이 시는 새를 사랑하고 연구하는 교수와 그를 바라보는 학생들 사이의 감정적, 가치적 거리감을 묘사해 줍니다. 시 속에서 교수는 자연과 새의 아름다움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그 감동을 학생들에게 전달하려 합니다. 그러나 교수가 새의 행동과 자연 현상에 대해 열정적으로 설명하지만, 학생들의 관심을 끌지는 못합니다. 교수의 가르침은 학생들에게 전혀 와닿지 않고, 학생들은 그의 제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자연과 인간의 감정적 소통의 부재와 사회에서 자연에 대한 관심 부족과 무관심을 반영하고 있는 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다음으로 소개할 시는
두 번 만난 친구와 세 번째 만나기 위해 혼자 놀
이터에 나가 시간을 죽이는 어색한 시간. 놀이터와
아파트 사이 철제 울타리로 떨어지는 빛살이 30년
전 주말 같아서 문득 쓸쓸해지는 시간. 그런데 어차
피 빛이란 균일한 것인데? 하고 감상을 돌이켰으나
회양목과 노란색 울타리가 눈꺼풀 아래로 들어오는
시간. 그러다 눈 비비며 졸음 참는 시간. 주말에 밥
먹고 술 마시러 나왔는데 슬픔 비슷한 기분에 빠지
다니, 조금 놀라는 시간. ……
「두 번 만난 친구에게 벌써 섭섭해지는 시간」
이 시는 일상의 작은 순간을 포착하면서도 내면의 복잡한 감정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입니다. 시는 감상에 잠기기 직전의 순간에서 끝을 맺습니다. 친구와의 만남, 그리고 그들이 곧 함께할 식사나 술자리를 예상하며, 그 찰나의 공허함과 혼란이 마무리됩니다. 이 시는 일상적인 상황 속에서도 복잡하고 섬세한 감정들이 어떻게 펼쳐지는지를 담아내어 줍니다. 그리고 순간의 고립감과 내면의 사유가 섬세하게 표현된 작품이라고 느껴졌습니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시는
생각 속 남자는 허무하지 않다 만일 그가 춥다면
나의 생각이 그의 외투에 단추 하나 덜 달았기 때문
에 모자에 들어갈 바느질 한 번을 빼먹었기 때문에
한 겨울에도 그는 광장으로 나갔다 정말 목이 다
쉬도록 외치고 또 외쳤다 그의 목소리가 멀쩡하다
면 남자가 목청을 높이던 시간 내가 딴생각에 빠졌
기 때문에 나의 생각이 며칠쯤 그의 손을 붙잡아 광
장 밖으로 이끌었기 때문에
그는 집으로 돌아와 아이와 산책한다 아이는 자
동차 바퀴만 보면 만지고 돌리고 싶다 문득 남자는
역사의 수레바퀴 같은 것을 떠올렸다 거기서 무수
히 깔려 죽겠구나 생각하다가
……
「그가 춥다면 나의 생각이 그의 외투에 단추 하나 덜 달았기 때문에」
이 시는 상상 속 존재와 현실의 경계를 허물며, 우리가 현실 속에서 느끼는 감정들을 정교하게 표현해 줍니다. 시를 통해 인간의 불완전함을 직시하고, 그것이 우리 삶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해 고민하게 해주는 시라고 생각했습니다.
김상혁 시인의 《슬픔 비슷한 것은 눈물이 되지 않는 시간》 이 시집은 감정의 미세한 차이와 시간을 통한 존재의 성찰을 깊이 바라보게 만드는 시집입니다. 또한, 김상혁 시인이 시 제목마다 큰 공을 들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독창적 문체와 현대적 감수성, 독자에게 감정의 본질과 시간의 의미를 재해석할 기회를 제공해 주고, 심오한 내면 탐구와 독창적인 표현을 낱낱으로 느낄 수 있는 시집이기 때문에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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