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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시집 소개] 《그러나 러브스토리》-장수진

by young poet 2024. 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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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알라딘]

 

 

 

이번에 소개할 시집은 '현대문학 핀 시리즈'인 장수진 시인의  《그러나 러브스토리》라는 시집입니다.

장수진 시인은 2012년 문학과 사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순진한 삶》,  《사랑은 우르르 꿀꿀》 등 시집을 써냈습니다. 

 

여러분의 러브 스토리는 어떻게 되나요? '사랑' 안에서 우리는 몰랐던 감정까지 경험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 시집은 과거의 아픔과 현재의 이야기 속에서 현실적이면서도 진솔한 감정을 다루며 섬세한 감각과 독창적인 이미지로, 사랑의 형태를 다각적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시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좋았던 시를 몇 편 소개하겠습니다. 

   내 눈동자는 매일 밤 어떤 장면의 끝에서 완전히
부서지곤 했다

  비슷하고 반듯하게 전개되는 일상을 거부하며 
숲으로 들어간 사람은 숲에서 길을 잃는다. 자신이 
지나쳐 온 길의 나무마다 표식을 남기지만, 그는 자
신이 남긴 표식과 끝없이 마주할 것이다. 나무는 반
복되고 숲은 증식한다. 날렵하고 작은 칼. 그것이 
유일한 가능성이다. 그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얼굴
에 단 하나의 표식을 남긴다. 돌아오지 말 것.

  숲은 내 뒤에 있다. 숲은 나를 뒤적거린다.

「숲의 뒷모습」

 

이 시는 일상의 반복성과 그로부터의 탈출, 그리고 그 과정에서 겪는 혼란과 내적 갈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단조롭고 반듯한 일상을 거부하며 숲으로 들어가지만, 그 숲은 곧 자신을 가두고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숲은 미지의 세계이자 화자의 내면을 상징해 주고,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만 끝없이 그것과 마주하는 무력함을 경험하고 있음을 나타내줍니다. 또한 '날렵한 칼'은 유일한 선택의 가능성을 상징하며 일상적 삶과 자아에서 비롯되는 불안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다음으로 소개할 시는 

친구여 어디까지 왔는가
이 물음은 네가 나에게 
나는 너에게 아무도 없는
가족사진을 보여준다

화분을 보냈더군
흙이 담긴 중국식 찻잔에 터지기 직전의
목화 꼬투리를
이렇게 고요하다니
말이 안 되잖아 찻잔의 목화밭

나에게는 
책상에서 자라는 것들을 죽일 수 있는
왼손의 능력이 있다
밤이 손에 닿으면

사람은 사람을 해치고
슬픈 순경은 오지 않지

창가에 번지는
입김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흐르는
무구한 고백들

편지를 썼던 손들은 숲에 버려져 있다

너는 결단코 주먹 쥔 손을 가져본 적이 없고
사물을 뭉뚱그려 생각하는 사람들은 
다만 약을 먹지

솜처럼 부풀어 오르는 안락

「친애하는 죽음에게」

 

이 시는 존재의 죽음과 상실, 내면의 갈등을 나타내며 고요함 속에 숨겨진 불안과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한 작품이라고 느껴졌습니다. 또한, 가족사진의 공허함, 목화의 이미지, 왼손의 능력 등 상징적 요소들이 감정의 깊이를 더해주며, 죽음에 대해 묘사해 줍니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시는 「그러나 러브스토리」라는 시입니다. 

비늘이 없는

절벽과

파도가 없는

퉁퉁 불은 발목과 
뛰어오는 아이가 없는

잠듦

아무도 없는
물속 벤치에서

청년 차이코는 프스키를 연주한다

털이 무성한 동물의 목을 어루만지듯
물이 털이 아닐 리 없다는 듯

기린 두 마리가 서로의 목을 감아 조른다
증오가 사랑이 아닐 리 없다는 듯

연거푸

차이코의 열 손가락이 
작은 원을 그린다
원은 곧 소멸하고

그렇게 파도
그렇게 음악
그렇게 해변

깊은 바다로부터 밀려 나온 손잡이들

잠든 사람들의 귓속으로
푸른 모래가 끝없이 들어간다

누군가는 근처 병원을 가고 
누군가는 무의식에 음악을 둔다

그들 코끝의 소금
한 톨

「그러나 러브스토리」

 

이 시는 상상력과 감각적인 이미지를 통해 고요하고 몽환적인 세계를 나타내주고, 감정과 현실의 경계를 허물어 줍니다. 비현실적인 설정과 상징적 이미지가 어떤 하나의 '러브스토리'와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작품으로 다가왔습니다.

 

 

장수진 시인의 이 시집은 과거의 시간과 현재의 시간들을 입체적으로 드러내 줍니다. 사랑의 복잡한 감정과 인간관계의 미묘한 양상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담아내고, 현실적이고 아이러니한 사랑의 모습을 깊이 있게 그려내어 독자에게 강렬한 감동과 깊은 성찰을 전달해 주는 작품이기 때문에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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