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알라딘]
이번에 소개할 시집은 양안다 시인의 《숲의 소실점을 향해》라는 시집입니다.
양안다 시인은 2014년 <현대문학> 신인 추천을 통해 작품 활동을 했으며, 《작은 미래의 책》, 《몽상과 거울》 등 시집과 책을 써냈습니다.
이 시집은 숲의 소실점에서 마주하는 감각들을 새롭게 일깨워주는 시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시 소개에 앞서 시인의 말을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꿈에서 맨발로 꽃밭을 걸었다. 걸음마다 발가락이 따가
워 견딜 수 없었다. 그리고 악취. 주위를 둘러보면 꽃밭은
전부 시들어 있었고 나는 슬퍼하지 않았다.
아직도 손발이 차갑지 않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이제 그만 깨어나고 싶었지만.
나의 미래이자 낙하산이 되어 준 친구들에게. 고마워.
우리는 여전히 부러질 것 같고 우스꽝스러워.
-2020년 5월
양안다-
꿈 속에서의 고통과 상실, 그리고 그 속에서도 여전히 존재하는 관계의 소중함을 표현한 시인의 말 같았습니다.
그다음으로 소개할 시는
6월의 벌레들이 과일에 꼬이기 시작하고
기댈 어깨가 필요했지 기후가 부서질 듯 건조한데
거리에는 너에 대한 적의가 소문으로 가득했다
발끝에 힘을 주고 걸어도 내리막은 점점 기울어져
골목을 헤매다 이곳에 왔어 나의 노래가 멎었던 곳
창문으로 마주친 눈빛
음악이 필요한데 사람들은 춤을 멈추지 않았지
어떤 고백은 입을 틀어막아도 새 나오고
닫히지 않는 귀, 노를 저어 나아가고 싶은데 이미 부러
진 마음과
마음을 떠올리면 왜 아름답고 슬프기만 할까 마음은 그
런 게 아니지
온몸에 기름을 붓고 불을 붙인 다음
타들어 가는 몸으로 다가가는 것
그 몸을 안아 주지도
외면하지도 못하는 것
그런 게 마음이라면
나, 네 소문 들었어 손목을 가리려 팔찌를 잔뜩 끼운다
고 사람들이 알려 줬지 네가 사랑하는 사람에겐 사랑하는
다른 사람이 있었고
두 팔에 얼굴을 묻으며,
울음은 다른 울음에 묻히고
어깨에서 시작되는 여진, 주체할 수 없는 입술과 그런 입
을 가리는 두 손이
끝나지 않을 거라는 믿음
그래서 울다가 울고 울다가 우는……
네가 악몽에서 마주칠 것들을 흉내 낸다
잠에 빠지지 않길 바라는 노래, 귓구멍으로 달려드는 벌
레 떼, 춤추는 이들이 사라지고
마음이란 걸 편지에 적지 못해서
경사는 점점 기울어지는데
널 뒤따라가지 않는다
계절과 잠과 계절의 잠을 묻어 두고
몸을 웅크린 채 조용히 흐느낄 곳
네가 손목 위로 새긴 어류의 비늘이
유영을 시작하는데
꿈에서도 그를 찾으려는지 너는 잠귀를 환하게 열어 둔다
나는 가벼운 발걸음, 제로 데시벨, 우는 소리 없이 표정
으로 울고
그리고 속삭임
꿈 작은 꿈
우는 건 너인데 눈물을 보는 건 언제나 나였다
「여름잠」
이 시는 복잡한 감정과 관계의 얽힘을 나타내며, 사랑과 상실, 고통, 그리고 그 속에서의 발견을 다뤄내 줍니다. 또한, "우는 건 너인데 눈물을 보는 건 언제나 나였다"라는 문장은 상대방의 고통을 함께 느끼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 깊은 울림을 주는 문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다음으로 소개할 시는
하나의 입술로 너무 많은 이름을 낭비했구나
내가 나를 모르면서 너를 부르고
또 너를 부르고
슬프다고 말했다
의미가 퇴색될 때까지
계속해서 슬프다 슬프다 슬프다고
중얼거렸다
나는 우리라는 이름 안에서 망가지고 있다
안타까워 사랑을 불신하는 세상 사람들이 마음의 벽
을 향해 돌을 던지고 뒤돌아서는 순간 벽이 와장창 무너지고
안타까워 나는 내가 무너질 때마다 억울하고 분해서 어금
니에 금이 가도록 이를 다물었다 입속에서 무언가가 씹힐
때마다 너의 창문도 깨져 있겠구나 너도 많이 안타까웠구
나 그런 생각이 들었고 너의 마음에 돌 던진 이를 모두 죽
여야겠어 안타깝다 이제 나는 죽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생
겨서 죽지도 못하지
몇 개의 주먹이 쌓여서 하나의 시체가 완성되는 걸까
너를 바라볼 때마다 나는 한 번도 한 적 없던 미래 생각
에 빠졌다
너보다 하루 먼저 죽는 것, 너 때문에 그게 나의 꿈이
된다면
우리의 기분과는 별개로
세계는 폭설로 잠기는 중이지
낮은 곳에서 떨어져도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신음해야
했는데
자제력을 잃고 있어 전에는 어땠는지 기억 안 날 만큼
무작위로 울고 빛이 조각났어 다음 날 잠에서 깨면 잊고
싶은 것만 기억에 남고 모조리 잊어버렸지 무언가를 인간
이라 부르기 위해서 몇 리터의 피와 물이 필요하고 얼마나
많은 양의 선악이 필요한 걸까 꽃을 꺾으며 생각했다, 사랑
은 폭력에 가깝지만 폭력은 절대 사랑이 아니라고……
그러나 폭설은 쏟아지기를 멈추지 않는다
오늘은 눈이 내린다고
내일도 눈이 내린다고
어제부터 사람들은 떠들었다
내일도
모레도
우리의 불행에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 착각할 때
우연을 운명이라고 잘못 들었을 때
눈보라 속에서 웃는 누군가를 보았어
어서 오라고, 손을 흔들었다 나는 침묵하기를 좋아했으
나 사람들 앞에선 입가를 찢어 미소를 지어야 했지 그것이
슬프고 슬퍼서…… 옥상 난간에 서 있을 때 같이 서 주는
이가 누구일지 상상했어 나는 나의 마음 안에서 망가지고
있다 온 풍경이 얼어붙는데 나 홀로 화상을 입었어 어서
와, 이곳은 하늘이 너무 높고 나는 바닥과 가깝다 사람들
은 웃고 있다 사람들은 입술을 길게 찢으며 웃고 있어 우
리는 울지 않는다 우리는 겨우 웃음을 지어내지만 울지 않
는다 침묵, 그 뒤의 두 번째 침묵
몇 개의 사랑이 쌓여야 하나의 이별이 완성되는 걸까
너를 바라볼 때마다 나는 한 번도 겪은 적 없는 슬픔,
슬프다 슬프다 슬퍼서
곤죽이 되도록 망가지는 것, 그게 나의 운명이라면
빛이 쏟아지는 시간이면
두 눈을 묶어 두고
우연이 운명으로 전염될 경우의 수를 헤아리는 일
나는 내일 밤 꿈의 장면에서 미리 망가지고 있는데
나의 기분과는 별개로
세계는 소음에 잠기는 중이었지만
「조각 꿈」
이 시에서 "하나의 입술로 너무 많은 이름을 낭비했구나"라는 구절은 사랑의 감정이 소모되고 있음을 암시해 주며, 사랑과 상실, 고통, 그리고 인간 존재의 복잡함을 표현해 줍니다. 그리고 감정의 억압과 그로 인한 내적 갈등이 주된 주제로 자신의 감정과 관계의 복잡성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있는 시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시는
‘견딘다는 건 무엇일까.
칼과 약을 쥐는 것으론 부족한 걸까.
바닥을 보고 나면 위를 바라볼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애초에 바닥이 없다면……’
친구는 시체의 표정으로 나의 안부를 묻는다
‘마음은 어디까지 떨어지려 하는 걸까’
그녀가 나를 끌고 간 곳은 폭이 좁고 경사가 가파른 계
단의 건물이었다 옥상으로 가는 문은 녹슨 철사로 감겨 있
었다' 여기는 누구도 찾지 않는 곳이에요, 그녀는 계단에
걸터앉아 자신의 옆자리와 나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나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모른 체하며 이마에 맺힌 땀이 흐르는
걸 느꼈다
어느 날은 이유 없이 사라져도 누구도 나를 찾지 않을
거라는 확신에 가득 찼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그녀에게 전
했다 그녀는 취한 눈으로 그녀와 나 사이 허공에 초점을
맞춘 채로 물었다, 누구신데 제게 이런 말을 하는 거죠?
—이건 백일홍이 아니라 안개꽃이에요.
—꽃 이름을 외우는 게 중요한가요?
—저는 아직 당신의 이름을 모르거든요.
“그냥 죽어.
네가 죽어야 내가 죽지 않을 것 같아.” 나는 진심과 농담
을 구분하지 못해서
부들거리며 떠는 그녀의 손을 바라봤다
잇자국이 선명한 손등에서 핏물이 흘렀고
금방이라도 마음이 조각날 것처럼
시뻘건 얼굴이 일그러져 있었다
“내일 아침이 되면 당장 죽어야 돼.
그렇게 할 거지?”
문득 나는 머리통이 없어져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사랑을 사랑으로 되돌려 주지만
악의를 악의로 되돌려 주지 않는 것처럼
“입술은 작은 사람이었으나 어디서든 쉽게 미소 짓고 장
단을 맞춰 주곤 했으니까요. 징조가 있었다면 그가 어릴
적부터 갖고 있던 증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는 미래에
대해 말할 때면 언제나 부정적이고 다운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티 내지않으려 애썼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상처를 감
추려고 할수록 가린 흔적은 점점 커지니까요. 다만 제가
간과한 것은 그가 회복될 거라는 낙관뿐이었습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우리가 스스로의 시간과 육체를
낭비하더라도 결국 이곳을 벗어나지 못할 거라고
친구가 옥상 난간에 걸터앉아 두 다리를 흔들고 있을 때
에도 나는 친구의 손가락 사이에서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
를 바라보며 두개골 깨진 그를 상상했다
그러니까 바닷속 물고기 같다는 생각
물 밖을 다른 세계라고 여기는 종처럼 우리는 가족
과 친구들, 연인을 잃어 가며 누가 더 슬퍼하는지 가늠하
곤 했다 우리는 서로를 위로하는 데에 많은 목소리를 버려
야 했고 마음을 내려놔야 했으며 진심을 감추어야 했다
연회장을 통째로 빌려 파티를 열자
초대를 거절한 이들만 모아 악몽으로 기록하자고
사랑을 사랑으로 되돌려 주지 않더라도
악의를 악의로 되돌려 주고 싶은 마음속에서
뭐해?
편지 쓰다 누워 있어. 술 먹었어?
먹었지. 많이 먹었어.
누구랑 먹었어?
잘 지내?
응?
잘 지내?
잘 지내. 알겠어. 그만 끊자. 나 이제 잘게.
응. 잘 자.
한밤의 숲
꽃무더기가 빛난다
꽃무더기 속에서 죽은 고양이의 두 눈이
빛난다
고양이의 사체에서
꿈틀거리는 것들이 무더기로 흘러내린다
옥상으로 가는 문이 잠겨 있다
내가 죽지 않으려 버티고 있는 동안
죽은 사람은 과연 누구인지를 생각해야 했다
‘마음은 언제쯤이야 이곳을 벗어날 수 있는 걸까.’
그러나 추락은 멈추지 않았다
「혼자 죽는 춤」
이 시는 친구와의 대화를 통해 내면의 갈등과 슬픔을 드러내고 삶과 죽음, 사랑과 고통의 경계를 담아내 줍니다. 서로의 고통을 나누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해의 부족과 절망을 통해 인간 존재의 본질에 다루고 있는 시라고 생각했습니다.
양안다 시인의 《숲의 소실점을 향해》라는 시집은 숲이라는 상징을 통해 인간의 내면과 외부 세계의 연결을 나타내주며, 감각적이면서도 잔잔한 진동을 전달해 주기 때문에 추천하는 시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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