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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시집 소개] 《유에서 유》-오은

by young poet 2024. 10.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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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알라딘]

 

 

 

 

 

 

이번에 소개할 시집은 오은 시인의 《유에서 유》라는 시집입니다.

오은 시인은 2002년 봄 <현대시>를 통해 등단하였으며, 《없음의 대명사》, 《왼손은 마음이 아파》 등 시집과 책을 써냈습니다. 

 

 

이 시집은 '있음'에서 '있음'으로 시인만의 언어로 사방으로 튕기는 리듬감 있는 시집 같았습니다. 

 

 

 

 

시 소개에 앞서 시인의 말을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꿀맛이 왜 달콤한 줄 아니?
꾼 맛도 아니고 꾸는 맛도 아니어서 그래.
미래니까, 아직 오지 않았으니까.

몰라서 달콤한 말들이 주머니 속에 많았다.

-2016년 여름
오은-

 

꿀맛이라는 표현으로 '꾼 맛도 아니고 꾸는 맛도 아니어서 그래'라는 부분은 현실의 맛이 아닌, 아직 경험하지 않은 미래의 가능성을 담아낸 시인의 말 같았습니다. 

 

 

 

 

그다음으로 인상 깊었던 시를 몇 편 소개해 보겠습니다.

귀퉁이가 좋았다
기대고 있으면
기다리는 자가 되어 있었다

바람이 불어왔다가 물러갔다
뭔가가 사라진 것 같아
주머니를 더듬었다

개가 한 마리 다가오고 있었다
처음 보는 개
개도 나를 처음 봤을 것이다

내가 개를 스쳤다
개가 나를 훑었다

낯이 익고 있다
냄새가 익고 있다

가을은 정작 설익었는데
가슴에 영근 것이 있어
나도 모르게 뒤돌아보았다

땀이 흐르는데도
개는 가죽을 벗지 않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일

땀이 흐르는데도
나는 외투를 벗지 않고 있었다
어찌하지 않은 일

우리는 아직 껍질 안에 있다

뭔가 잡히는 것이 있어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꼬깃꼬깃 접힌 영수증을 펴보니
다행히 여름이었다

미련이 많은 사람은
어떤 계절을
남보다 조금 더 오래 산다

「계절감」 

 

이 시는 계절의 변화와 그에 따른 감정의 흐름을 통해 인간의 내면을 표현해 줍니다. 또한 가을의 정취 속에서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며 지나가버린 것들에 대한 미련을 담아낸 시 같았습니다.

 

 

 

 

그다음으로 소개할 시는

누구나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단다 대명사와 조사
가 결합하면 가능해진다
나는 누구에 속하는지 자신이 없었다 냄비 속에서
불안이 끓어 넘치고 있었다 배고픔과 배 아픔이 동
시에 찾아왔다

아침에는 심술을 부리고 도리질을 쳤다 손길이 다
가오면 뿌리쳤다 자발적으로 가난해졌다

언제고 활짝 피어날 수 있단다 대명사와 조사가
결합하면 막연해진다
나는 언제에 속하는지 자신이 없었다 냄비가 뜨거
워서 떨어뜨리기 일쑤였다 쉽게 달아오르고 재빨리
식어버렸다

낮에는 냄비 바닥처럼 우는소리를 했다 전체가 까
매지고 한 곳은 특히 새까매졌다 우발적으로 우울해
졌다

밤이 되었다

밤에만 착해지는 사람들이 있었다
오늘 한 말을 하나하나 되짚으며 움찔움찔 몸서리
를 쳤다 부끄러워서 이불을 뒤집어썼다 내일 할 말
을 가슴속에 차곡차곡 쌓아두었다 설레서 이불을 또
한번 뒤집어썼다 한여름에도 꼭 덮고 자야
돼 덮어야 안심이 된다

자신이 주인공이라도 된 것처럼 말했다 명사와 조
사가 결합하면 근사해진다

밤에만 착해지는 사람들이 있었다
밤에는 착해지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불을 덮고
가만히 밤이 되는 사람들이 있었다

「밤에만 착해지는 사람들」 

 

이 시는 정체성과 불안, 그리고 인간 내면의 복잡한 감정을 담아내 줍니다. 그리고 자신을 찾고자 하는 갈망과 그 과정에서 느끼는 혼란을 표현하고 있는 시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시는

홀에는 사람이 많았다
말을 걸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사람이 홀에 있었다
홀이 사람과 있었다

홀이 쓸쓸할 때
홀로 있을 때

홀이 가장 쓸쓸할 때
홀을 가득 메운 사람들이
홀연히 사라져버렸을 때

홀수가 되었을 때

홀에는 사람이 있었다
사람이 있었던 자리에
구멍이 숭숭 뚫렸다

옷에 구멍이 난 것처럼 부끄러웠다
그 구멍 속으로 온몸을 숨기고 싶었다

접시가 실려 가고
샹들리에가 꺼지고
그림자가 사라지고
텅 빈 공간에
적막이 텅 내려앉을 때

홀몸이 되었을 때
식은 줄도 모르고
마음은 곁을 향할 때

그새가 홀홀 날아가 
홀이 홀로 빨려 들어갔을 때

홀은 홀로서
커다란 구멍이 되었다

홀이 있었다
홀이 사람에 있었다

「홀」 

 

이 시는 '홀'이라는 공간과 그 안에 존재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로 인해 느끼는 고독과 상실감을 표현해 줍니다. 시의 구조와 반복적인 표현은 화자의 감정 변화를 강조해 주고 '홀'이라는 공간을 단순한 장소 이상의 의미로써 표현하고 있는 시라고 생각했습니다.

 

 

오은 시인의 《유에서 유》라는 시집은 독특한 언어 감각과 생생한 이미지를 통해 독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주는 시집이기 때문에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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