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알라딘]
이번에 소개할 시집은 김행숙 시인의 《무슨 심부름을 가는 길이니》이라는 시집입니다.
김행숙 시인은 1999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으며, 《사춘기》, 《이별의 능력》,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등 시집과 책을 써냈습니다.
이 시집은 독특한 형상과 감각적 표현을 나타내줍니다. 또한, 김행숙 시인이 추구해 온 '진정한 말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여정을 담고 있으며, 변주되고 유연한 형상들, 완전할 수만은 없는 글 속에서 발견되는 반짝거림을 담은 시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시인의 말을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훔친 물건을 돌려주기 위해 다음 날 밤을 기다리는
도둑이 있었다.
저마다
더 깊은 밤이 필요했다.
-2020년 여름
김행숙-
'도둑'은 단면적으로 나쁘다고만 생각했는데, '착한 도둑'도 있을까? 생각하게 된 문장이었습니다. 마음이 약해서, 우리는 긴 밤이 필요하고 그 긴 밤 안에서 스스로를 다독거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담은 것 같은 시인의 말은 위로를 속삭이는 것 같았습니다.
그다음으로 좋았던 시를 몇 편 소개해 보겠습니다.
깊은 밤이란, 빌라 옥상에 세 사람이 달을 보며 서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중 한 사람은 어둠과 구별되지 않아서
두 사람이 자기들 두 사람뿐이었다고 기억하는 것이다.
한층 더 깊은 밤이란, 칸막이와 칸막이로 이루어진 사
무실, 그리고 사무실과 사무실로 이루어진 빌딩이 한 개
의 텅 빈 상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세계로 사라
졌다가..... 돌아오는 마술처럼 거대한 상자의 미로에서
검은 성냥개비 같은 사람이 홀로 걸어 나오는 것이다. 그
의 몸을 사납게 물어뜯던 불길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리고 가장 깊은 밤이란, 달의 인력이 파도처럼 계단
을 공중으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그리고 계단에 빠진 사
람은 삶의 바닥이 얼마나 깊은지 깨닫고 커다란 충격에
휩싸이는 것이다.
「밤의 층계」
이 시는 밤의 다양한 깊이를 통해 인간의 존재와 현실의 심연을 묘사해 줍니다. 시의 각 부분은 점점 더 심화되는 '밤'을 상징적으로 그리며, 인간 내면의 불안과 상실을 담아냅니다. 현실과 초현실 사이에서 인간이 겪는 불안한 내면의 고통을 표현한 작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다음으로 소개할 시는
한밤중에 지구는 미끄러워지는 것 같습니다
지구의 중력은 썰매처럼 차들을 끌고 어디론가 마구마
구 달아나는 것 같습니다
술과 침에 젖은 승객은 3일 중에 가장 깊은 잠에 빠지고
검은 선글라스를 낀 기사는 앞만 보고 있습니다
앞에 뭐가 있길래?
밤 속의 밤 속의 밤 속의 밤에?
땀을 뻘뻘 흘리며 자다가 일어나서 베란다로 나왔습니다
나는 어떤 생물인가? 방충망 앞에서 독백을 시작하는
나는
방충망의 구멍들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는 나는
날아가지 못하는 나는
작은 구멍을 들락날락하는 날벌레들에 대해
꾹 닫은 입에 대해
곡기를 끊고
7일 후 공기를 끊은 입에 대해
너는 중요한 것을 택시에 두고 내릴 거야
다음 날 알게 되는 것들에 대해 중얼거리기 시작했습
니다 이미 시작되었다고 중얼거리기……
끓어오르기……
「열대야」
'한밤중에 지구는 미끄러워지는 것 같습니다'와 같은 문장 표현들이 특히 좋았던 시였습니다.
불안과 혼란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의 감정을 감각적으로 묘사하여, 자기 존재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아내 줍니다. 또한, 현실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면서도 열대야 속에서의 서사와 감정을 잘 담아낸 시 같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시는
잘 아는 길이었지만......
우리가 아는 그 사람처럼
알다가도 모를 미소처럼
안개가 자욱하게 낀 날이었어요.
눈을 감고도 갈 수 있는 길이었지만
눈을 감지 못하는 마음이었어요
나는 전달책 k입니다.
소문자 k입니다.
거기까지 가는 길은 아는데
왜 가는지는 모릅니다.
오늘 따라 나는 울적합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어요.
이럴 때 나는 내가 불편합니다.
만약 내가 길가에 떨어진 돌멩이라면
누군가가 나를 주워 주머니에 숨길 때의 그 마음을
누군가가...... 누군가를 쏘아보며 나를 집어던질 때의
그 마음을
내가 어떻게 알겠어요?
내가 알면 뭐가 달라지나요?
평소에도 나는 나쁜 상상을 즐겨했습니다
영화 같은
영화보다 더 진짜 같은
그러나 상상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면
우리의 모든 상상이 비껴가는 곳에서
나는 나를 재촉했습니다.
한 명의 내가 채찍을 들고
한 명의 내가 등을 구부리고
잘 아는 길이었는데
눈을 감고도 훤히 보이는 길이었는데......
안개가 걷히자
거기에 시체가 있었습니다
두 눈을 활짝 열어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무슨 심부름을 가는 길이니?」
심부름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저는 길을 나설 때마다 길치여서 지도를 보고 또 보고 반복하는 것이 단점이지만, 한 번 가본 길은 까먹지 않는 다는 것이 장점이 되었습니다. 낯선 길을 마주할 때면 여전히 두려움이 앞서기도 하지만 목적지가 있다면, 가지 못할 길은 없습니다.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당장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아도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고, 미래의 우리가 말해줍니다.
이 시는 익숙한 길과 불안한 현실 속에서 인간이 겪는 고뇌와 두려움을 시각적으로 표현합니다. 화자는 자신의 존재와 감정을 끊임없이 묻고 있지만, 그 이유나 목적을 알 수 없는 혼란 속에서 방황하며, 마지막에 마주한 충격적인 장면은 그 불안의 정점을 표현해 줍니다. 대부분의 현대인들이 많이 느끼는 감각이 아닐까 생각하게 만드는 시였습니다.
"이야기가 그릇이라면 깨진 이야기가 있었다. 당신도 피를 흘렸을 것이다." 시집의 뒷면에 나온 문장처럼 '어린이'에서 '어른'이 된 우리는 모두 다 불완전한 존재라는 '흔들림'을 담아낸 시집이기에 이 시집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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