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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시집 소개] 《고구마와 고마워는 두 글자나 같네》-김은지

by young poet 2024. 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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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알라딘]

 

 

 

 

이번에 소개할 시집은 김은지 시인의  《고구마와 고마워는 두 글자나 같네》라는 시집입니다.

김은지 시인은 2016년 <실천문학>을 통해 등단했으며,  《책방에서 빗소리를 들었다, 《여름 외투》 등 시집과 책을 써냈습니다. 

 

 

이 시집은 섬세한 언어와 따뜻한 시선으로 일상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소소한 감정과 경험들을 담아내 줍니다. 제목에서부터 느낄 수 있듯이, 일상적인 언어들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고, 김은지 시인만의 관찰이 알록지게 번져가는 시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시인의 말을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바쁘시죠,
내가 먼저 묻는 건
기꺼이 외로움을 선택하고 싶어서

-2019년 9월
김은지-

 

자발적으로 고립된 상태에서 외로움을 택하는, 요즘 현대인들이 많이 마주하는 '소속감'과 '고립감' 사이의 갈등이 담긴 시인의 말 같았습니다. 

 

 

 

 

그다음으로 좋았던 시를 몇 편 소개해 보겠습니다. 

누군가 시를 낭독한다
나는 가만히
종이컵에 담긴 사이다를 바라본다

공기 방울이 표면에 떠오르고 터진다
꼭 세 개씩
가운데로 모였다가 터진다
터지면 다음 기포가
이제 자신들의 차례라는 듯 떠오르고

떠오르고
모이고
터진다

어떤 문장이 나를 고개 들게 한다
나는 내 차례라는 듯이
떠오르고
모이고 터진다

누군가 시를 낭독한다
그의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다들 더 조용히 한다
조금 소음을 내며 귤을 집어온다

귤껍질로 토끼 얼굴을 만든다
봄이 왔지만 아직 춥기 때문에
귤색 토끼에게 목도리를 둘러준다
시는 끝나지 않고
입원한 친구에게서 카톡이 온다

나도 시를 낭독한다
(내가 시를 읽는 동안 사람들은
무엇을 보고 무엇을 했는지 알 수 없다)

첫 줄을 읽고
난 내 억양이 마음에 들지 않아 속상한 마음으로
그저 틀리지 않기만을 바라다가
시에 강아지가 등장했을 때
비로소 평소 말할 때처럼 읽을 수 있게 된다

누군가 아주 긴 시를 낭독한다
왼손을 쫙 펴고 내 손바닥을 본다
점이 하나 있다
어릴 때부터 그 점을
샤프심이 박힌 거라고 믿었다

  점이 그때와 같은 위치에 있는지 기억해 내려고
애쓰는데
기억은 나지 않고
아름다운 시는 끝나지 않는다

「경청」 

 

시 낭독회를 배경으로 내면의 방황과 집중의 순간, 그리고 그사이에 일어나는 작은 생각들의 흐름을 아름답게 그려냅니다. 시를 듣는 행위와 시를 읽는 행위를 통해 여러 생각들이 교차하는 모습을 담아내고, 우리 삶 속에서 경험하는 고요한 순간들과 그 속에서 흩어지는 생각의 결을 섬세하게 묘사해 주는 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다음으로 소개할 시는 

반찬을 흘릴 때처럼
당신이 최근의 성공을 자랑했다

어쩌다가 나온 얘기로
당신이 그 일을 말할 때
난 내 일처럼 기뻐해 주지 못했던 것 같다

당신의 표정이 꼭
새 셔츠에 반찬을 흘린 것처럼
낭패스러웠다

난 당신의 성공이 멋지다고 생각하는데

다만 우리가 좀 전까지
각자의 쓰라린 가슴에 대해
오래 털어놓고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표정을 바꿀 수 없었어

라는 건 핑계겠지

혼자 걸어가면서
빈 주머니에 손을 넣고
괜히 손등으로 주머니를 확인한다

거울이 있었다면
조금 더 진심처럼 웃어줄 수 있었을까

거울이 있었다면

그랬다면
내가 내 표정을 보고
울어 버리지나 않았으면 다행이지

창고인지 서랍인지

멋진 일에 축하를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안녕을
언제 어디에 두었는지

이 코트의 주머니는 아니다

「손등」 

 

이 시는 타인의 성공에 대해, 자신의 반응과 내면적 갈등을 섬세하게 표현해 줍니다. 또한, 진심으로 기뻐해 줄 수만은 없는 솔직한 모습을 통해 독자에게 공감을 주는 시라고 생각했습니다. 

 

삶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성공을 진심으로 축하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더욱이 상대가 처한 상황이 썩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타인의 성공을 애써 외면하고 싶을지도 모릅니다. 인간의 솔직한 내면을 드러낸 시여서 한편으로는 마음을 조금 들킨 거 같기도 한 시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시는 

  그 사람은,

  그 사람은,
  그 아이는 모든 백일장에서 장원이었다
  한번은 월요일 조회 시간에 
  교단에서 상을 받고 내려갔다가
  다시 이름이 불려 올라갔다가
  하나 더 받아야 하니 내려가지 말라고 해서 
  학생들도 교장 선생님도 웃었던 적이 있다

  그건 어떤 기분일까

  글 잘 쓰는 학생이 많은 고등학교였는데도,
  주최 측에서에서도 좀 여러 학생 나눠주고 싶었을 텐
데도,
  도저히 그럴 수 없이 인정하는
  너무 뛰어난 글

  내가 하도 신기해하니까,
  그 애를 잘 아는 친구가 말해줬다
  아빠가 국어 선생님이라서 그래
  어릴 때부터 항상 시집을 읽는대

  중학교 땐가 캠핑 갔을 때
  그 애와 내가 같은 조가 된 적이 있다
  나는 김치볶음밥을 맛있게 해 주겠다고 몇 번이고
약속했다
  그 애는 나에게 연세대라는 단어를 처음 알려줬다

  "난 연세대 가고 싶어"
  "거기가 어딘데?" 
  "공부를 아주 잘해야 갈 수 있어."
  "근데 왜 난 몰라? 안 좋은 학교 아니야?"

  연세대만 보면
  연세대가 과연 좋은 학교인지 궁금해했던 
  캠핑장 수돗가가 떠오른다

  대학에 가서도 그 아이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고향 떠나 대학 생활이 어떤지
  시험을 다시 치는 건 어떨까 고민했던 것 같다

  대구에 지하철 화재 사고가 났다
  그 아이가 탄 것 같다고 했다
  2월 18일 오전 9시 53분

  "다 똑같지 뭐."
  그 아이를 좋아했던 친구는 나중에
  무언가가 다 똑같은 일이라고 했다
  뭐가 똑같다는 건지........
  몰랐지만 물어보지 않았다

  대체 얼마나 글을 잘 쓰면
  대회마다 장원일까

  .......

  그 아이는 
  내가 아는
  가장 시 잘 쓰는
  사람

「내가 아는 시 가장 잘 쓰는 사람」 

 

이 시는 한 아이의 탁월한 재능과 그 아이에 대한 기억을 담고 있습니다. 뛰어난 글재주를 지닌 한 아이를 회상하면서, 그의 천부적인 재능과 함께 그를 둘러싼 삶의 다양한 순간들을 떠올립니다. 이 시는 단순한 재능의 기억을 넘어서, 그 아이가 남긴 깊은 인상을 통해 삶과 죽음, 그리고 잔잔한 회고의 감정을 드러내 여운을 주는 시라고 생각했습니다.

 

 

김은지 시인의 《고구마와 고마워는 두 글자나 같네》이 시집은 일상의 작은 순간들을 따뜻하고 섬세한 시선으로 포착하여, 익숙해서 쉽게 지나칠 수 있는 감정과 관계를 새롭게 느끼게 해주기 때문에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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