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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시집 소개] 《내가 무엇을 쓴다 해도》-이근화

by young poet 2025. 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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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알라딘]

 

 

 

 

 

 

 

이번에 소개할 시집은 이근화 시인의 《내가 무엇을 쓴다 해도》라는 시집입니다.

이근화 시인은 2004년 『현대문학』 신인 추천으로 등단했으며, 《칸트의 동물원》, 《우리들의 진화》, 《차가운 잠》 등 시집과 책을 써냈습니다.

 

 

이 시집은 위태로운 존재를 통해 여운을 남겨주는 시집 같았습니다. 

 

 

 

 

인상 깊었던 시를 몇 편 소개해 보겠습니다. 

오늘 밤 한 권의 책이 나를 낳았다
피부와 머리카락이 없고
입술과 성기가 없는 어여쁜 사람
오늘 밤 내가 태어나고 나는
한 권의 책을 네 옆구리에서 다시 찾아냈다
여러 개의 서랍 속에서
모두들 태어나고 싶은데

그게 나를 부르는 소리라니
안아줄 팔도 없이
달려갈 발도 없이
네가 나를 부른다
아무 냄새가 없는 꿈 속에서
나는 괴로워한다
나의 탄생을
한 권의 책을

그건 내가 너를 만나는 동안 만들어낸
길쭉한 귀 동그란 코 벌어진 입술
애써 얼굴을 지우며
한 권의 책을 가만히 내려놓았다
그게 너일까
한 권의 책 속에서
정말 그렇게 살려고 내가 태어났다

네가 영원히 죽는다 해도
내가 무엇을 쓴다 해도

「내가 무엇을 쓴다 해도」 

 

이 시는 탄생과 존재의 의미를 담아내며, 한 권의 책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발견하고 "너"라는 존재를 찾으려는 고뇌와 혼란을 표현합니다. "너"의 영원한 죽음과 상관없이 자기 자신과 존재의 의미를 찾기 위해 고통스러운 여정을 이어가는 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다음으로 인상 깊었던 시는

어둠을 뚫고 가는 버스 덕분에
우리의 발걸음이 더 아름다워진 걸까
다음 버스를 정말 탈 수 있을까
신호등이 깜박거린다
지나가거나 멈추거나
그것은 분명하게 삼원색
세 개의 눈으로는 부족한 우리

차창에 어른거리는
나비잠자리 풀벌레
모두 죽어라
불타오르기 좋아라
대합실에서 졸고 있는
너의 달콤한 땀 냄새
우리는 오늘 어디로든 간다
간다

오늘 네 얼굴에 떠도는 것을
어렵게 미소라 불러도 될지
너는 남자도 여자도 아니고
다만 오래되었을 뿐
끝까지 살아남은 주인공들이
이야기 속에서 빛난다

입을 열지 말고
눈을 뜨지 말고
귀를 영원히 닫고
그냥 가라
네 손에 쥔 것은
우산 꽃다발 모자 지팡이
내가 알지 못하는 나의 뒷모습

「다시 사랑」 

 

이 시는 도시의 어두운 밤 속에서 인간의 존재와 불확실성을 담아내며, 이것이 다시 하는 사랑의 모습과 닮았다는 것을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는 시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시는

노란 모과를 매단 나무는
무겁겠다 춥겠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
모과를 잃은 나무는
외롭겠다 무섭겠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

착한 모과야​

모과는 장롱 위에
모과는 책상 위에
모과는 향긋할까
모과는 기억할까
나무를 바람을 언덕을
아니다 그렇지 않다

​ 다정한 모과야​

뜻하지 않게 툭 떨어지고
우연히 밟히고
멀리까지 무겁게 굴러간다
그것이 모과라고 말한다면
모과는 힘들다

​모과는 바구니에​

모과가 썩어간다
모과가 무너진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어도
모과는 노랗다 싱싱하다
아니다 멀어져가는 사람들

발밑에 모과가 구른다

「모과」 

 

이 시는 모과를 통해 존재의 의미와 시간을 초월한 지속성, 그리고 변화에 대한 고찰을 담아내고 있는 시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근화 시인의 《내가 무엇을 쓴다 해도》라는 시집은 깊은 통찰력과 감성적인 표현이 돋보이는 작품들로 가득 차 있는 시집이기 때문에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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