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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시집 소개] 《나의 9월은 너의 3월》-구현우

by young poet 2025. 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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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알라딘]

 

 

 

 

 

 

 

 

이번에 소개할 시집은 구현우 시인의 《나의 9월은 너의 3월》이라는 시집입니다.

구현우 시인은 2014년 『문학동네』 등단했으며, 《모든 에필로그가 나를 본다》, 《버리기 전에 잃어버리는》등 시집과 책을 써냈습니다.

 

 

이 시집은 감각적인 언어가 사랑의 서사로 이어지는 시집 같았습니다. 

 

 

 

 

시 소개에 앞서 시인의 말을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너는 사랑과 죽음이라 했다. 

나는 너를 사랑의 죽음으로 이해했다. 

유서 같은 것이었다. 이 세상 어디엔가 있어도 살아서는 다시 만날 수 없는 너의 것이라 유서 같은 것이었다. 

-2020년 3월
구현우-

 

사랑의 상실과 그로 인한 깊은 슬픔, 그리고 그 사랑이 이제는 더 이상 현실에서 만날 수 없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것임을 내포하고 있는 시인의 말 같았습니다. 

 

 

 

 

그다음으로 인상 깊었던 시를 몇 편 소개해 보겠습니다.

창밖의 비를 좋아하지만 비에 젖는 건 조금도 좋아하지 않는 너에게

해주려고 한 얘기가 있어

선유도에서 만나자 선유도에는
오만 색으로 어지러운 화원이 있으니까

녹음된 빗소리를 들으며 비로소 안정을 찾는 너에게

어울린다 믿는 풍경이 있어

혀끝이 둔감해지면 입안 가득 맥주를 머금고
어디에선가

이 통화가 계속되지 않는다고

네가 여길 때면 무음이 침묵과 다르다면 난치의 감정이라면

그건 바라지 않아도 젖어드는 일

너는 가을옷이 필요하구나 나는 봄옷을 생각하면서
양화대교를 건너고 있어

선유도에서는 볼 수 있을 거야 차마 겉으로는 구분되지 않는 계절

나의 9월은 너의 3월

선유도에서 만나자 선유도에는
직접 본 다음에야 알게 되는 게 있으니까

어쩌면 나는

네가 자주 입는 꽃무늬 원피스에 수 놓인 노랑과 파랑
하나는 무난하지만
하나는 네가 그토록 역겨워하는 향기를 품은 꽃이라는 걸

말해줄 수도 있을 거야

그리고 나는

그 후의 복잡한 마음을 전할 수 있을 것 같아 들뜬 채로 한강을 지나가다가

아주
서서히

선유도로 가는 길에 모두 잃어버리고 마는 거야

「선유도」 

 

서로 다른 내면의 감정을 가진 두 사람이 특정 장소에서 만나면서 겪는 감정의 복잡함과 아름다움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는 시 같았습니다.

 

 

 

 

그다음으로 인상 깊었던 시는

서글픈 오전부터 지루한 오후까지

까마귀가 울자 당신은 덜 외로워진다. 오전부터 오후까지 창밖을 바라보면서 지나가는 모든 대상에 이름을 부여하는 동안

검은 비가 내리자 사람일 거라고 믿은 짐승이 사람 같은 것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초침 소리와 떨어지는 물방울의 리듬에 당신은 덜 외롭다가도 더 아프다. 의식적인 헛기침으로 잠시나마 혼자가 아니라는 기분을 맛본다. 이런 날이 계속된다면 카페인에 의지할 필요도 없을 테지. 다시 한번 이런 날이 올 것이라 느끼면서도 당신은 이런 시간이 두 번 오지는 않을 거라 생각한다.

하얀 안개가 깔리자 순결한 마음이 불온한 몸의 외부에 있다고 착각한다.

빗소리에 까마귀의 울음이 섞이고 흑백으로 흔들리면 슬픈 재즈가 된다. 떨어지는 것을 듣기만 하면서 멈출 방법을 모르면서 당신은 입술을 까딱거린다. 침묵을 깨고 싶어한다. 서글픈 오전부터 지루한 오후까지 이런 음악이 계속되어도 좋은 것일까. 그런 사이 창밖을 지나가던 이들은 대부분 당신의 눈을 거쳐 사람이 되었다는 걸 떠올린다.

감상에 빠진 자신이 싫어 당신은 실소한다. 그 시각 커피가 식어가는 소리와 타인들의 손가락이 지평선을 퉁기는 찰나와 그 너머로 사라지는 하루의 선율 그리고 무미건조하게 쓴 글씨의 볼륨이 높아졌다가 작아지는 것을 듣고 만다. 창밖보다 창 안이 선명해진 순간 창문에 비친 것을 보던 당신은

누가 알아주지 않을 때에도 울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서글픈 오전부터 지루한 오후까지」 

 

이 시는 외로움과 고독 속에서도 자신의 감정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외부 세계의 요소들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투영하며 스스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보여주는 시 같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인상 깊었던 시를 소개하겠습니다.

좋은 일이 있는 네게 꽃다발을 안겨준다 짧은 감정 이상의 의미로 포장된다 푸르고 깊은 향 노랗고 아무는 모양 이 꽃은 먹을 수도 있다 그 말을 듣고 너는 더욱

단 하나도 부서지지 않도록 조심스레 든다

가만히 두어도 보고만 있어도 된다 물을 주는 것도 물에 타는 것도 괜찮다 향을 품은 꽃은 모두 생화다 향은 향일 뿐 진실도 거짓도 무용하므로

오늘은 아름답다는 이런 고백도 가능하다

아무 일도 없는 내가 너의 주위에 있다 초에 붙은 불을 끌 때에야 말문이 열린다 기념으로 남긴 사진 안에

아주 뜨겁지도 정말 차갑지도 않은 것이 너의 품에 있다

밤은 고요하다

셀 수 있는 만큼의 행복만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렇게 중얼거렸던 너라
이따금 좋아 보인다

이름과 생태를 너는 알고 싶어 한다 나는
더는 구할 수 없는 것이라 말한다 누구도 구해낼 수 없으니

너를 보는 나는 우울하다

너무 많은 아름다움에 파묻혀 네가 보이지 않는다

「거의 모든 사랑」 

 

이 시는 감정의 깊이와 관계의 복잡함을 묘사하며, 사랑과 슬픔 그리고 그로 인한 변화를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는 시라고 생각했습니다.

 

 

구현우 시인의 《나의 9월은 너의 3월》라는 시집은 깊이 있는 상념과 섬세한 감정 표현이 돋보이는 시집이기 때문에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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