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알라딘]
이번에 소개할 시집은 류시화 시인의 《당신을 알기 전에는 시 없이도 잘 지냈습니다》라는 시집입니다.
류시화 시인은 198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으며,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등 시집과 책을 써냈습니다.
이 시집은 생생한 언어로 감각을 두드리는 시집 같았습니다.
시 소개에 앞서 시인의 말을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겨울 여행자는
여름 여행자보다 더
자신이 가고 있는 방향을 신뢰한다
차가운 별 아래 얼어붙은 길 걸어
어느 곳으로 나아가든
마침내는 봄에 다다를 것임을 알기에
어느 별의 가시를 밟고 걸어가든
머지않아 새벽에 이를 것임을 아는
밤의 여행자처럼
그래서 시인은
여름 여행자보다 겨울 여행자에게
낮의 여행자보다 밤의 여행자에게
시를 적어 보낸다
-류시화-
삶의 어려운 순간에도 희망과 긍정을 잃지 않는 태도를 강조하고 있는 시인의 말 같았습니다.
그다음으로 인상 깊었던 시를 소개해 보겠습니다.
밤늦게까지 시를 읽었습니다
당신이 그 이유인 것 같아요
고독의 최소 단위는 혼자가 아니라
둘이라는 것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사랑을 만난 후의 그리움에 비하면
이전의 감정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말도
시 아니면 당신에 대해 얘기할 곳이 없어
내 안에서 당신은 은유가 되고
한 번도 밑줄 긋지 않았던 문장이 되고
불면의 행바꿈이 됩니다
당신을 알기 전에는
시 없이도 잘 지냈습니다
당신을 알기 전에는
당신 없이도 잘 지냈습니다
「당신을 알기 전에는 시 없이도 잘 지냈습니다」
이 시는 시와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내는 진솔한 마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밤늦게까지 시를 읽는 이유가 상대방 때문임을 고백하며 상대방이 자신에게 깊은 은유와 의미로 자리 잡았음을 표현하고 그전에는 시 없이도 그리고 상대방 없이도 잘 지냈다고 회상하는 시 같았습니다.
그다음으로 인상 깊었던 시는
네가 내 곁에 왔는데도 나는 너를 기다린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내 안에서 일렁이던
그리움 잃지 않기 위해
사랑은 그리워하지 않음을 금하므로
그리움은 채워지지 않는 빈자리를 남겨 두는 것이므로
몇 생의 시간을 걸어
문을 열고 지금 네가 내 옆에 왔는데도
나는 기다린다
이미 왔지만 아직 오지 않은 너를
내 깊은 곳 어딘가에서 하염없이 오고 있는 너를
부재에 의해 더 알게 되는 존재를
그 어디쯤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까
인생이 짓궂은 장난을 치기 전으로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하던
그 계절 어디쯤으로
너보다 먼저 비가 내리고
너보다 먼저 먼 별빛 하나가 찾아오고
나목의 가지 끝에서 꽃이 터진다
그리움이 끝나면 너는 오지 않을 것이므로
그리운 사람 더 그리워하기 위해
이미 내 곁에 온 너를 나는 기다리고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시 몇 생을 걸어
오고 있는 사람 하나
「그리움의 모순어법」
이 시는 사랑하는 이가 이미 곁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리워하고 기다리는 것을 담아내고, 이는 사랑이란 것이 완전히 채워지지 않고, 항상 갈망과 그리움을 동반한다는 의미를 담아낸 시 같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인상 깊었던 시는
뭍에 잡혀 올라온 물고기가
온몸을 던져
바닥을 치듯이
그렇게 절망이 온몸으로
바닥을 친 적 있는지
그물에 걸린 새가
부리가 부러지도록
그물눈을 찢듯이
그렇게 슬픔이 온 존재의
눈금을 찢은 적이 있는지
살아 있다는 것은
그렇게 온 생애를 거는 일이다
실패해도 온몸을 내던져
실패하는 일이다
그렇게 되돌릴 겨를도 없이
두렵게 절실한 일이다
「살아있다는 것」
이 시는 생존의 고통과 절망,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의 절실함을 표현하고 있는 시라고 생각했습니다.
류시화 시인의 《당신을 알기 전에는 시 없이도 잘 지냈습니다》라는 시집은 섬세한 감성을 담고 있는 시집이기 때문에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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