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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시집 소개] 《나를 참으면 다만 내가 되는 걸까》-김성대

by young poet 2025. 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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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알라딘]

 

 

 

 

 

 

 

 

이번에 소개할 시집은 김성대 시인의 《나를 참으면 다만 내가 되는 걸까》라는 시집입니다.

김성대 시인은 2005년 <창작과 비평> 신인상으로 등단했으며, 《귀 없는 토끼에 관한 소수 의견》, 《사막 식당》 등 시집을 써냈습니다.

 

 

이 시집은 나를 참으면 다만 내가 되는 것일까에 대한 원초적인 질문 던져주는 시집 같았습니다. 

 

 

 

 

시 소개에 앞서 시인의 말을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우리가 시를 쓰는 건 시를 부수기 위해서였다.
모든 부서지는 것만이 잠시 빛났다.

이제 이렇게 말할 수 없게 되었다.
선희야.

그 후 시를 쓰지 못했다.

-김성대-

 

시인이 겪은 변화를 통해 창작의 어려움과 그리움을 표현한 시인의 말 같았습니다.

 

 

 

 

그다음으로 인상 깊었던 시를 몇 편 소개해 보겠습니다.

죽은 자의 목발을 쪼개 장작으로 쓸 때
그 불은 절름거린다

신체의 일부인지 시체의 일부인지
알 길이 없다

멀리 가는 발소리가 난다
발목이 저려 온다

절름이는 불길이 그림자를 짚는다
길을 잃은 그을음이 난다

나는 한 걸음 물러난다
모른 척 숨을 쉰다

산 자는 죽은 자의 신이니까

「3인칭」 

 

이 시는 삶과 죽음의 복잡한 관계와 그 사이에서 느끼는 감정의 중첩을 3인칭 시점으로 담아내고 있는 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다음으로 인상 깊었던 시는

나는 내가 어디 묻혔는지 모른다

눈 속에 짓무른 발자국이 돋고
시체를 품은 나무가 썩어 가는데

깨도 깨도 잠 속
무산된 잠들이 몰려와

나무는 죽은 잎을 어떻게 견디나
죽은 나무는 왜 이토록 서 있나

감기지 않는 눈을
뜬눈으로 다 보낸
내가 죽어 차가운 뱀의 밑바닥에서

감길까 안 감길까
산 채로 묻힌 눈이 끓어
죽지 않고 잠들어

죽음을 기다릴 시간이 없다
왜 죽는지 모르고 죽을 때까지

무산되는 죽음 속에서
일생을 다 죽음으로 탕진하고
돌아오지 않는 눈 속

나는 내가 그랬지
죽어 놓고 그런지 모르지
내가 그랬는지 모르지

「무산」 

 

이 시는 존재의 불확실성과 죽음에 대한 깊은 고찰을 담아내어 자신이 어디에 묻혔는지 모른 채 눈 속에서 죽음과 삶의 경계를 헤매고 죽은 나무를 보며 생과 사의 지속성을 묻습니다. 죽음의 불가피성과 그 이유에 대한 무지, 그리고 죽음을 둘러싼 삶의 허무함과 상실감을 강조하고 있는 시 같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시는

자정의 서랍 속
다족류의 더딘 발소리가
생각을 지연하는 것처럼 들려

지연된 생각들이
내게 뒷걸음치고 있는 걸까
먼지에 남은 손자국은
나를 털어내고 있을까

입술은 다 말해 버렸는데
목소리는 아직 오고 있고
목소리를 기다리느라
입술이 한 말을 잊는다

사이가 비어 가는 귀와
몸을 점묘하는 맥박 사이에서
내가 나의 괴뢰가 되는 시간

나를 참으면 다만 내가 되는 걸까
뒤늦게 다다른 목소리가
한쪽 귀로 재귀할 때

가라앉은 목소리를 더듬어
자정의 서랍 속에 넣고
다른 쪽 귀를 빌려 잠근다

누군가 나에게 위조되어 있다

「마조라나 페르미온*」 

 

이 시는 정체성과 존재에 대한 깊은 고찰을 담아내 줍니다. 자정의 고요함 속에서 들리는 다족류의 발소리가 시인의 생각을 지연시키고, 지연된 생각들은 시인의 과거를 되돌아보게 하는 시 같았습니다.

 

 

김성대 시인의 《나를 참으면 다만 내가 되는 걸까》라는 이 시집은 깊은 철학적 고찰과 정체성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담아낸 시집이기 때문에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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