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알라딘]
이번에 소개할 시집은 이기리 시인의 《그 웃음을 나도 좋아해》라는 시집입니다.
이기리 시인은 제39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하며, 《우리를 세상의 끝으로》, 《젖은 풍경은 잘 말리기》등 시집과 책을 써냈습니다.
이 시집은 단순히 웃음을 찾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어두운 면을 직시하고, 그 속에서 삶의 깊이를 탐구하는 작품입니다. 그 웃음을 나도 좋아해, 그래서 웃고 싶다는 바람이 담긴 시집 같았습니다.
시 소개에 앞서 시인의 말을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왜 인간은 두 눈으로 자신의 심장을 볼 수 없을까
왜 인간은 무릎이 등에 닿을 수 없을까
왜 인간은 눈물을 발바닥으로 흘릴 수 없을까
-2020년 12월
이기리-
시인의 말에서 제기된 질문들은 인간의 신체적 한계와 자아의 불완전성에 대해 담아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다음으로 인상 깊었던 시를 몇 편 소개하겠습니다.
동생이 자고 있는 사이에 몰래
금발의 인형을 한 손으로 움켜쥐고
목을 부러뜨린 적이 있습니다
우는 동생 앞에서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들고
방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는 인형 머리를 보며
잘못을 빌었습니다
다신 그러지 않을게요
밥도 알아서 잘 챙겨 먹고 동생도 잘 돌볼게요
이제 다 컸으니까
다음 해 봄에 동생과 나는
꽃이 다 피기도 전에
새로운 집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소풍을 간다고 하면 아저씨가 특별히 싸 준 김밥을
아껴 먹다가 못된 아이들에게 다 뺏기기도 했었지만
발등을 내어 주는 날에는 조심스럽게
나의 발바닥을 포갰고
춤을 추면서
당신은 말했습니다
같이 살게 될 거야
변함없는 사랑이 이어질 테고
주말에 나들이도 가고 여행도 많이 다니자
과자를 나눠 먹으며 각자 받고 싶은 선물에 대해 말했고
동생이란 영원히 자라지 않는 아이라는 점에서
이번에는 나도 꼭 받고 싶었습니다
대문을 여는 아저씨가 당신과 함께 들어왔습니다
동생과 나는 등을 돌린 채 예쁜 포장지를 뜯었습니다
우리가 인형을 좋아하는 취향만큼은 닮았으므로
한 방울의 피도 섞이지 않았다거나
성이 다르다는 것쯤은
이유가 되지 못합니다
다시 모두가 잠든 사이에
두 인형의 얼굴을 바꿔 끼우고
혹시 몰라 여분의 팔과 다리도 가져왔습니다
앞으로는 이러지 않을게요
손바닥에 나의 아름다운 인형을 올려 두고
꿈도 안 꾸고 잘 잤습니다
목이 돌아간 줄도 모르고
「어린이날」
이 시는 재혼한 가정에서 시작되는 형제자매 간의 복잡한 감정과 내면의 갈등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과거의 후회와 치유의 과정을 담아내 줍니다. 또한, 인형을 통해 표현된 이 감정들은 인간의 본질적인 갈등과 가족의 관계성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다음으로 소개할 시는
마침내 친구 뒤퉁수를 샤프로 찍었다
어느날 친구는 내 손목을 잡더니
내가 네 손가락 하나 못 자를 것 같아?
커터 칼을 검지 마디에 대고 책상에 바짝 붙였다
친구는 나의 손가락을 자르지 못했다
검지에는 칼을 댄 자국이 붉게 남았다
내 불알을 잡고 흔들며 웃는 아이들의 모습이 유리문에
비쳤다
엎드려 자고 있을 때
뒤로 다가가 포옹을 하는 뒷모습으로
옷깃을 풀고 가슴속으로 뜨거운 우유를 부었다
칠판에 떠든 친구들을 적었다
너, 너, 너
야유가 쏟아졌다
지우개에 맞았다
불 꺼진 화장실에서 오줌을 쌀 때마다 어둠 속에서 어떤 손아귀가 커졌고
천장을 뚫고 들어오는 수십 개의 검지가 이마를 툭툭
종례 시간이 끝나도
다행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선생님이 나를 끌어안았다
선생님에게 장래 희망을 말했다
저녁을 먹고 혼자 시소를 타면
하늘이 금세 붉어졌고
발끝에서 회전을 멈춘 낡은 공 하나를
두 손바닥으로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다
진흙이 지구처럼 묻은
검은 모서리를 가진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진다는 건
세상으로부터 주파수가 맞춰지는 느낌
이제 다른 행성의 노래를 들어도 될까
정말 끝날 것 같은 여름
구름을 보면
비를 맞는 표정을 지었다
「그 웃음을 나도 좋아해」
이 시는 어린 시절의 갈등과 상처, 왕따를 당했던 화자의 불안한 내면 상태를 강렬하게 그려냅니다. 과거의 상처와 현재의 감정을 교차시키며 내면의 갈등을 심층적으로 담아내 주는 시 같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시는
나는 당신의 이름을 남들에게 함부로 말하는 사람 나는
당신의 꽃에 함부로 물을 주는 사람 꽃보다 화분을 더 함
부로 만지는 사람 당신의 이불을 함부로 펴는 사람 당신의
기억을 함부로 헤집고 원래대로 돌려놓지 않는 사람 나는
당신이 잠든 밤을 함부로 뜬눈으로 보내는 사람 당신의 이
마에 함부로 손을 올리고 당신은 미열을 앓는다 나는 당신
앞에 함부로 나타나 늦은 고백을 하는 사람 나는 당신의
베개를 함부로 들추고 당신이 보낸 어제를 닦아 주는 사람
나는 당신의 이름을 당신 귓속에 함부로 속삭이고 당신이
있어 이 세상에 온 사람 커튼에 빛이 모이고 나는 당신의
새근거리는 숨을 들으며 공기를 이해하는 사람 나는 당신
의 외투를 예쁘게 걸고 당신이 일어나면 홀연히 사라지는
사람 나는 당신이 간밤에 무서워했던 천장에 야광별을 붙
이는 사람 나는 당신과 멀어질수록 환해지는 사람
「빛」
이 시는 다 읽고 나면 '빛'을 '당신'으로 표현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시입니다. 타인에 대한 간섭과 지배, 자아의 복잡한 감정을 탐구하며 관계의 복잡성과 개인의 내면적 갈등을 표현해 줍니다. 또한, 타인의 사적 영역을 존중하는 것과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는 것 사이의 긴장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관계의 다양한 측면을 굴려볼 수 있도록 하는 시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기리 시인의 《그 웃음을 나도 좋아해》이 시집은 내면의 갈등을 치유하고 자아를 성장시키려는 과정을 담아냅니다. 시를 통해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고 치유의 과정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독자들이 자신의 삶과 감정을 투영할 수 있게 하면서 폭넓은 공감과 연결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에 추천하는 시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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