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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시집 소개] 《한 사람의 닫힌 문》-박소란

by young poet 2024.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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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알라딘]

 

 

 

 

 

이번에 소개할 시집은 박소란 시인의 《한 사람의 닫힌 문》이라는 시집입니다.

박소란 시인은 2009년 <문학수첩>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심장에 가까운 말》, 있다》, 수옥》등 시집과 책을 써냈습니다. 

 

 

이 시집은 일상의 미묘한 감정들을 담담하게 풀어내는 동시에 깊은 울림을 줍니다. 또한, '마음의 문이 닫힌' 사람의 표정을 떠올려보게 만드는 시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시 소개에 앞서 시인의 말을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아름답다'를 대신할 말이 없었다.
'울음'이나 '웃음'과 같이,
'나'는 지우려 해도 자꾸만 되살아났다.

스스로도 감지하지 못한 사이 거듭 '문'을 열었고
그사실을 끝내 들키고 싶었다.
문을 열면, 닫힌 문을 열면
거기 누군가 '있다'고.

있다고.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다.
보이지 않는 '사람'을 더 깊이 '사랑'한다.

-2019년 1월
박소란-

 

고립된 마음속에서도 다른 사람과의 연결을 희망하고, 보이지 않더라도 존재하는 누군가를 사랑하고자 하는 마음 그리고 그 존재를 확인하고 싶어 하는 갈망이 담긴 시인의 말 같았습니다. 

 

 

 

 

그다음으로 소개할 시는 

당신은 무얼 먹고 지내는지
궁금합니다
이 싱거운 궁금증이 오래 가슴 가장자리를 맴돌았어요
 
충무로 진양상가 뒤편
국수를 잘하는 집이 한 군데 있었는데
우리는 약속도 없이 자주 왁자한 문 앞에 줄을 서곤 했
는데
그곳 작다란 입간판을 떠올리자니 더운 침이 도네요
아직
거기 그 자리 있는지 모르겠어요
맛은 그대로인지
 
모르겠어요
실은 우리가 국수를 좋아하기는 했는지
 
나는 고작 그런 게 궁금합니다
귀퉁이가 해진 테이블처럼 잠자코 마주한 우리
그만 어쩌다 엎질러버린 김치의 국물 같은 것

좀처럼 닦이지 않는 얼룩 같은 것 새금하니 혀끝이 아린
순간
순간의 맛
 
이제 더는
배고프다 말하지 않기로 해요 허기란 얼마나 촌스러운
일인지
 
혼자 밥 먹는 사람, 그 구부정한 등을 등지고
혼자 밥 먹는 일
 
형광등 거무추레한 불빛 아래
불어 선득해진 면발을 묵묵히 건져 올리며
혼자 밥 먹는 일
 
그래서
요즘 당신은 무얼 먹고 지내는지

「심야 식당」 

 

이 시는 음식을 매개로 한 관계의 기억과 그 속에서 느껴지는 감정의 복잡성을 담아냅니다. 과거의 관계가 남긴 흔적과 그 후의 고독한 현실을 섬세하게 표현하며, '요즘 당신은 무얼 먹고 지내는지'라는 질문은, 결국 현재 연결이 끊어진 그와의 관계를 되돌아보는 내면적 물음인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다음으로 소개할 시는 

울음을 멈출 수 없을 거라 생각했어요
뺨을 감싸 쥔 두 손은 젖어 물크러질 거라 생각했어요

물,
이라는 말은 어째서 이다지도 청승스러운 것인지
한컵 물을 따라 내밀면 아니요 누구든 사양할 거라 생각
했어요

사람들은 부주의하고
그러므로 자주 발을 헛딛곤 하니까

우는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곤 하니까
이 속에 무엇이 있나 과연 진짜인가, 그러다
일렁이는 눈망울에 비친 한 탁한 표정에 놀라 저만치 달
아나고 말 거라
그렇게 생각했어요

조심하세요
살아있습니다 나는 말했지요 당신이 처음 들어섰을 때
고요히 흔들린 채였고

울음을 멈출 수는 없을 거라 생각했어요

이 길을 지나 집으로 가는 내내
내 집은 아주 깊은 곳에 있습니다 말했지요 겁주듯 말했
지요
당신이 문득 되돌아 몸을 던졌을 때

어차피 장난이라 생각했어요
아무도 익사하지 않는 꿈이라 생각했어요

「웅덩이」 

 

이 시는 슬픔과 고독, 그리고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그 슬픔과 고통을 그대로 드러내며, 그로 인해 타인과의 관계에서 겪는 혼란과 상처를 담아냅니다. 시 속에서 물, 울음, 깊은 집 등 여러 상징적 이미지들을 통해 내면의 고통을 독자들에게 전달하며 그 고통이 얼마나 깊고 진지한 것인지를 상기시켜 주는 시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시는 

사람이다, 자세히 보니 쓰레기 더미였다 종량제 봉투에
말끔히 싸인
밤의 전봇대에 비스듬히 기댄
그를 지나치며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눈이 마주칠까봐

누군가 뒤쫓아오는 기척을 느끼고서
달렸다 빨리 더 빨리
정신없이 도망치다보니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없어요?

벤치에 앉아 알 수 없는 것들을 돌이켜 생각할 때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는 사람이 있었다
모른 체 내가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발갛게 부어오른 뺨을 매만지고 선 가로등은

꺼지지 않았다

사람이다, 문을 여니

빛이었다 블라인드 틈으로 몰래 기어든
내 빈 책상에 엎드려 곤히 잠든
그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주머니 속 언 손을 꺼내어
내밀었다
이내 거두었다 깰까봐 깨어 날까봐

쉿!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며
돌아보니 아무도 없었다

없어서 돌아보았다

돌아보니 사람이, 숨겨진 사람이 있었다

「한 사람」 

 

이 시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두려움과 불안을 직시하면서도, 동시에 그 속에서 새로운 관계를 향한 갈망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상징적인 장면과 이미지들을 통해 한 사람과의 관계를 풀어내며 독자에게 감정적 울림을 전해주는 시 같았습니다.

 

 

박소란 시인의 《한 사람의 닫힌 문》이 시는 섬세한 감정 묘사와 깊은 성찰, 그리고 현대인이 느끼는 고독과 상처를 진실하게 담아내어 줍니다. 또한, 일상의 소소한 장면들 속에서 관계의 단절과 고독 그리고 사람들 간의 거리감을 표현하며 그 속에서 느끼는 상실과 불안을 고요하면서도 강렬하게 담아내기 때문에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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