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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알라딘]
이번에 소개할 시집은 신미나 시인의 《백장미의 창백》이라는 시집입니다.
신미나 시인은 200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싱고,라고 불렀다》, 《당신은 나의 높이를 가지세요》 등 시집과 책을 써냈습니다.
이 시집은 흰빛이 주는 희미함과 아름다움에 대해 담아낸 시집 같았습니다.
시 소개에 앞서 시인의 말을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옛날에
선배 시를 정말 좋아했어요
무슨 일 있었어요?
우리 여기 같이 왔었지
옛날에
그래, 옛날에
-2024년 가을
신미나-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며 그리움과 회고의 감정을 표현하고 있는 시인의 말 같았습니다.
그다음으로 인상 깊었던 시를 몇 편 소개해 보겠습니다.
절정이 지나간 백장미는
오래전 옛날을 지나온 얼굴이고
당신은 한 톨의 소금도 집어먹지 않고
싱겁게 웃었습니다
투석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무서운 꽃밭에서 풀어졌습니다
장미가 맹렬히 붉기를 거부할 때
모든 색에서 멀어져
다만 흰빛으로만 희미해질 때
속눈썹이 붉은 아이가
검은 입을 크게 벌리며 오고 있습니다
양팔을 벌리며 당신을 데리러 오고 있습니다
「백장미의 창백」
이 시는 생명과 죽음, 변화와 시간의 흐름에 대한 깊은 묘사와 상징을 담아내 줍니다. 각각의 구절은 삶의 다양한 측면을 복합적으로 표현하여 그 의미를 곱씹어 보게 하는 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다음으로 인상 깊었던 시는
언니들은 비밀이 많고
금요일엔 주름이 많은 치마를 입었지
가장 좋은 블라우스를 꺼내 입고
흔들리는 높은 구두를 신고 뾰족하게 웃었네
나도 따라가고 싶어
금요일 밤
미러볼이 돌아가는 여름밤의 공연장
드럼 치며 노래하는 가수를 보고 싶어
넌 아직 어려
더 크면 주머니를 갖게 되겠지
남자들이 등 뒤에 감춘 시시한 약속을
이 말을 남긴 채 도시로 떠났네
주머니 속에는 시를 쓴 종이가 있는데
언니들을 슬프게 만드는 시가 있는데
여름휴가는 짧고
동생이 시를 써서 언니들은 기쁘다고 말하고
시를 쓰면 나쁜 짓을 하다가 들킨 것 같아
언니들을 시로 써도 될까
사탕수수밭 너머로 불어오는 바람을
굴뚝 사이로 물결쳐오는 문장들을
언니는 풀었던 머리카락을 하나로 묶으며
머릿수건을 두르고
식판을 들고 배급받는다 밥과 국을
구두는 금요일에만 꺼내 신었네
반짝이는 건 죄다 옷장 속에 숨어 있지
새들이 한꺼번에 수풀에서 솟구칠 때
바람 주머니는 고요히 부풀고
뭔가 시작되려는데
그게 무엇인지
아무도 내게 일러주지 않았지
아무도
「바람 주머니가 부풀 때」
이 시는 어릴 때부터 성장하며 느끼는 다양한 감정과 경험을 섬세하게 표현해 줍니다. 특히 언니들에 대한 동경과 동시에 자신의 성장 과정에서 느끼는 복잡한 감정들을 담아낸 시 같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시는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걸인에게 마지막 동전을 내줄 수 있는
성자가 나타났다고
누군가는 손가락질했습니다
가면 뒤에 숨은 뱀의 혀를 보지 못했냐고
뱀의 혀로 미량의 독을 속여 파는 것뿐이라고
사람들은 저마다 가진 저울로
영혼의 무게를 재보고 싶어했습니다
그 영혼이 납으로 세운 십자가처럼 무겁더라
짚으로 엮은 십자가를 지고 무거운 시늉만 하더라
겉과 속이 같다는 건 천국의 마음입니까?
지옥에 가까운 믿음입니까?
믿고 싶은 대로 사람들은 저마다 신을 빚었습니다
성자는 사람들을 피해 동굴로 들어가버렸고
사람들은 자신이 만든 신을
인정받고 싶어서 다시 성자를 찾았습니다
동그랗게 둘러앉아 모닥불을 피우며
입을 모아 성자를 찬양했습니다
따뜻한 불빛이 동굴의 안쪽을 비췄지만
그림자만 일렁일 뿐 기척이 없었습니다
나와라! 나와라!
사람들이 손뼉을 치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모닥불을 피우던 나뭇가지로 횃불을 만들었습니다
나와라! 나오라니까!
화가 나서 동굴 안으로 불을 던졌습니다
연기 속에서 성자가 동굴 밖으로 나왔을 때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돌아왔다!
그가 고난을 이겨내고 살아서 돌아왔다고
「순수주의자」
이 시는 '순수주의자'라는 소재를 사용하여 인간의 신념과 성자에 대한 기대, 그로 인한 갈등과 고난, 인간의 모순에 대해 다룬 시라고 생각했습니다.
신미나 시인의 《백장미의 창백》이라는 시집은 단순히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라, 문학적 깊이가 있기 때문에 추천하는 시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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