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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시집 소개] 《샤워젤과 소다수》-고선경

by young poet 2024.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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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알라딘]

 

 

 

 

 

 

이번에 소개할 시집은 고선경 시인의 《샤워젤과 소다수》라는 시집입니다.

고선경 시인은 202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우리를 세상의 끝으로》 시집을 써냈습니다.

 

 

이 시집은 20대의 불완전함을 여러 모양으로 빚어낸 지점토 같은 시집 같았습니다. 

 

 

 

 

시 소개에 앞서 시인의 말을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너에게 향기로운 헛것을 보여주고 싶다.

-2023년 10월 
고선경-

 

실제로 존재하지 않거나 실체가 없는 것, 환상이나 꿈같은 것을 말하는 시인의 말 같았습니다.

 

 

 

 

그다음으로 인상 깊었던 시를 몇 편 소개해 보겠습니다.

어떤 믿음은 난간 같았어

야경이라는 건
어둠이 밀려날 수 있는 데까지를 말하는 걸까
이 도시는 사람들의 소원으로 빼곡해

아무도 없는 곳으로 놀러가면
내 손바닥에 밴 아오리사과 향기
그러나 압정을 한 움큼씩 쥐고 있는 기분

우리는 목이 마르고 자주 등이 젖지

리듬을 이해하지 않으면서
리듬에 대해 얘기했어

등이 젖은 사람을 따라 걷다가
저마다 웅덩이가 있구나
퐁당퐁당 생각했어

아무것도 훼손하지 않으면서 훼손되지 않고 싶다

너와 손을 맞잡고 싶지만
내 손안의 압정을 함께 견디고 싶지는 않다

깊은 바다로 다이빙하는 것과
작은 물웅덩이로 다이빙하는 것
어느 쪽이 더 위험할지

그딴 건 모르겠고 물수제비나 뜨자
나는 요령이 없어

내려다본 골목에 채소를 가득 실은 푸른 트럭이 서 있다
누군가가 몰래 무 하나를 훔쳐간다
희고 싱싱해서 그냥 먹어도 맛있을 것 같다

방수가 잘되는 페인트를 엎지르고서
우리는 온몸이 젖고 있었다

「우리는 목이 마르고 자주 등이 젖지」 

 

이 시는 인간의 내면, 고통, 관계, 그리고 일상 속에서의 작은 기쁨과 슬픔을 담아내며 미묘한 감정을 통해 깊은 여운을 남겨주는 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다음으로 소개할 시는

담배는 끊었으면 좋겠고
카페에서 아이스커피를 사 먹고 싶지 가끔은
친구들에게 꽃이나 향수를 선물하고 싶어

오늘은 재료 소진으로 일찍 마감합니다
팻말을 본 사람들이 아숴워할 때
나는 그 가게의 주인이 되고 싶지

매일이 소진의 나날인데
나를 찾아오는 발길은 드물지

돈을 많이 벌고 싶지
사랑도 하고 싶은데 잘하고 싶은 거지

나를 구성하는 재료의 빛깔과 질감
누가 좀 만져줬으면 좋겠어

옷장 속에서 남몰래 축축해질 때도
누가 나를 꺼내 좀 털어줬으면

모처럼 단잠에 빠졌다가 영원히 깨어나지 않는
그런 걸 소망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내 주변엔 많다

어제나 오늘로 충분한 게 아니고
내일이 과분해서

그런데 사랑은 해야겠지

얼마나 정직할 수 있을까 돈과 노동과 사랑 앞에서
정직한가 돈과 노동과 사랑은

만져지지 않는 부위가 만져지기를 바라는
그런 걸 소망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바로 나인 것

슈퍼에 가면 불빛 반지라고 적힌 사탕을
오래도록 바라보는 한 아이가 있다

손가락 위에서 달콤하게 빛나는
내일이라는 약속이 필요한 거지 우리는

「돈이 많았으면 좋겠지」

 

이 시는 내면적 갈망을 솔직하게 드러내며 인간의 본질적인 소망을 담아내고, 사회적 관계를 낱낱으로 드러내는 시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시는

감은 눈 속에서 어두운 숲이 부풀었어 이파리 한 장에도 나는 쉽게 긁혔고 너는 괜찮아 괜찮아 말해주었다 동전을 던져 미래를 결정하려 했으나 동전은 손바닥을 통과해 깊고 깊은 웅덩이 속으로 가라앉았다 미래가 나를 결정하려 하는 것 같아 괜찮아 괜찮아 하지 말고 네 심장을 꺼내 나에게 줘 너의 그 녹슨 심장 말이야 혹시 억울하니

밤은 매일의 페이지를 넘긴다 파본 파본 파본 나는 너무 시끄러운 귓속말이야 마음대로 길을 내지 마음에 드는 식물을 보면 뿌리째 뽑아버리지 어디선가 날아온 공이 뒤통수를 세게 쳐서 나도 모르게 눈을 번쩍 떴어 눈을 뜨면 어떤 세계는 더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다 지하철에서 회사에서 식당에서 집에서 캄캄한 눈꺼풀 안쪽을 두드렸다

한 달도 가고 일 년도 갔다 한물간 동전들이 하나둘 내 안으로 떨어져내렸다 다시 그 숲에 가게 된다면 부를 질러버릴 거야 그게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니까 그때 숲은 환희로 가득차게 되리라는 게 내가 지은 결말이었다 너는 안 들려 안 들려 하다가 내 몸에 기름을 부었다 만약 폭우가 내렸더라면 더 아름다운 장면으로 거듭날 수 있었을 텐데

밤은 너무 자주 읽은 편지야 모든 문장 속에서 너는 사이프러스처럼 서 있고 흔들리고 향기를 풍긴다 적당히 촉촉해서 우수에 젖기 쉬운 페이지

어디로 갈 거야?
네가 향하는 곳

우산을 버리고 폭우를 맞으며 한 발 두 발 허밍은 산책 산책은 허밍 그런 말로 우리는 우리를 얼마든지 기만할 수 있다 나의 깊고 더러운
숲속을 걷다가 버려진 자동차에 몸을 싣는다 그건 내가 결정한 미래 시동은 가까스로 걸리게 되어 있다 그리고 돌진 돌진 돌진

신호등에 어떤 불도 들어오지 않은 아주 짧은 순간 나는 어떻게 하면 아름다워질 수 있을까 생각하다 공중전화 박스를 박았다 단 한 번의 굉음 녹슨 수화기가 떨어져 대롱거렸고 그곳에서 너의 허밍이 가느다랗게 들려왔다 괜찮아 괜찮아 우리는 눈을 떠야 보이는 세계에 갇혀 있었다 숲의 한가운데서는 언제나 깊고 깊은 도시가 발광했다

「밝은 산책」

 

이 시는 복잡한 감정과 상징을 통해 인간의 내면세계, 고독, 그리고 존재의 의미를 표현해 줍니다. 또한, 다양한 이미지와 감각을 통해 '산책'이라는 소재로 잘 담아낸 시 같았습니다.

 

 

고선경 시인의 《샤워젤과 소다수》 이 시집은 청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담아내어 공감과 깊은 여운을 주는 시집이기 때문에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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