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알라딘]
이번에 소개할 시집은 조시현 시인의 《아이들 타임》이라는 시집입니다.
조시현 시인은 2019년 <현대시 신인상>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애매한 사이》 등 책을 써냈습니다.
이 시집은 감정에도 건반이 있는 것처럼 두드리는 순간 깊은 울림을 주는 시집 같았습니다.
시 소개에 앞서 시인의 말을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슬픔에는 구간이 없는데
어떻게 악보를 옮겨 적지요?
-2023년 2월
조시현-
슬픔은 특정한 순간이나 장소에 국한되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느낄 수 있는 보편적인 감정이라는 것과 동시에 구간이 없어서 옮길 수 없다고 표현한 시인의 말 같았습니다.
그다음으로 인상 깊었던 시를 몇 편 소개해 보겠습니다.
죽은 나비를 오랫동안 쥐고 있었어
사람들은 시차를 두고 밥을 먹었다
나는 가끔 혼자였다
일어나면 물을 마시고 많이 걷지는 않았다
그림자가 빠르게 열렸으므로 도망쳤다
성당 앞에서 언제나 문이 열려 있다는 글귀를 보았다
정말로 문이 열렸으므로 도망쳤다
각자가 아침 점심 저녁을 챙겨 먹는 동안
슬픔은 언제나 배가 불렀고
지구는 반만 어둡고 반만 밝았고
얼음이 갈라졌다
물이 너무 많은 지구와
가 보지 못한 나라와
너무 쉬운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자기 몫의 도시락을 싸는 사람과
매일 한 번씩은 죽지 않겠다고 결심하던 사람
누가 떠난 자리에 오랫동안 앉아 있으면
다 알 것 같았다 온기가 누구의 것인지 헷갈리는 것이 좋았다
모든 일은 빛이 있는 곳에서 벌어졌어
냉기가 스며드는 창가를 견디고 있다
망가뜨리고 싶어서 신을 찾았다
그들이 아직도 나를 쥐고 놓지 않는다
「빛이 떠나는 경로」
이 시는 슬픔, 고독, 그리고 존재의 복잡성을 담아낸 것 같았습니다. 각 구절은 감정의 깊이와 인간 존재의 고뇌를 드러내며, 여러 상징과 이미지를 통해 강한 인상을 남겨주는 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다음으로 인상 깊었던 시를 소개해 보겠습니다.
미국의 하나님에게만 기도했어요
그가 더 넓은 마음을 가졌을 것 같아서
해바라기를 잔뜩 꺾어요
반만 돌기로 결심했어요
같은 부분의 가사를 자꾸만 잊어버려요
아침 메뉴를 고를 수 없는 계절이에요
사람들은 전조에 대해 이야기해요
온몸이 전구가 된 것 같아
사건이 되어가는 중이죠
넘어져도 계속
일어날 수 있어서 무서워요
좋아했던 만화영화의 결말은
기억조차 나지 않고
팬티가 차분하게 말라가요
우유는 가방 구석에서 조용히 터져 있었고
목이 꺾여 죽는 것들을 상상해요
해바라기는 아름답게 시들어갑니다
어느 날엔 욕조가 폭발해버렸죠
전구가 쉬지 않고 깜박거려요
나는 박자를 셉니다
아직도 영어를 배워요
아이 러브 유
아이 러브 유
이제 터질 때가 됐는데
아이 러브 유
아이 러브 유
「유월」
이 시는 현대인의 고독, 불안, 그리고 사랑에 대한 감정을 독특한 이미지와 상징으로 표현해 줍니다. 각 구절은 일상적인 요소와 감정의 교차점을 나타내며 깊은 사유를 유도해 주는 시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시는
벌레가 귀로 들어갔을 땐 손전등을 대고
가만히 기다리면 된다
복도는 깨끗하고 밝다
누군가 꼼꼼하네, 말한 것을 듣고
꼼꼼하네, 생각하게 됐다
기쁨이 뭔지 아는 사람은
얌전히 저녁 식사를 기다린다
쌀은 물을 삼키며 물렁해진다
영혼을 끌어안은 살처럼
무른 과일은 계속 골라내줘야 해요
붙어 있는 것까지 상해버려서
공기에 닿으면 썩기 시작한대서
많은 말을 삼켰다
머리를 기대거나 팔뚝을 맞대고 돌아가던 버스
꽁무니를 쫓아 잠기던 노을
가장 예쁠 때 죽고 싶었는데
출구가 많은 건물에서는 곧잘 헤맸다 한참을 걷다 잘 못 왔다는 것을 깨달아 돌아가야 했다 결정이
지나가고 있었다
머리는 이미 다 썩어버렸는지도 모르지만
소금물에 브로콜리를 거꾸로 담가두면 깨끗하게 씻을 수 있어요 이십 분 기다리면 봉오리가 열리면서 좁쌀만한 흰
벌레들이 떠오릅니다 그렇게 많이 먹는 줄 미처 몰랐을걸요 정말 깜짝 놀랄걸요
때때로 자면서도 벌레를 삼키는걸요
악취 없이
직원은 멍든 과일만 담은 카트를 밀고 사라졌다
관계자 외 출입 금지 구역
삼키고 싶은 것이 많아질 땐
식탁 아래 웅크리면 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벌어지는 일들 어쩌면 생각에 다리가 달린 것 같아 지금 소릴 내는 이게 내 생각인가요? 그게
움직이는 소리를 듣고 있나요? 그래도 나 생각하고 있는 거군요 아무 생각 없는 것보단 나은 거겠죠 물구나무를 서
면 봉오리가 열릴까? 새하얀 벌레들이 쏟아져 나올까? 생각이 계속
기어가고 있는데
그 초록색 대가리를 후려쳐줄까?
사방에서 꽃이 핀다 짓무르는 딸기 터져봐야 방구벌레 웃고 있는 양말을 뒤집으면 도깨비였다
지금
무슨 생각해?
전화벨이 울린다
어디로 기어 나가도
거실이었다
개미굴에 끓인 알루미늄을 부어 넣으면 개미굴을 본뜰 수 있대
환한
모델하우스
하늘이 붉다
너 지금
정말 예쁘다
뒤집어 빤 것이 마르면
뒤집어 갠다
「인사이드 아웃」
이 시의 제목은 '인사이드 아웃'이라는 영화를 한 번 떠올리게 합니다. 또한, 일상적인 요소들이 어떻게 인간의 감정과 존재를 반영하는지를 담아내 줍니다. 시의 각 구절은 단순한 묘사를 넘어 심리적이고 철학적인 깊이를 담아낸 시 같았습니다.
조시현 시인의 《아이들 타임》이 시집은 '아이들의 시간'이라는 지점을 담아내 순수한 시선과 감성을 통해 삶의 다양한 면모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만드는 시집이기 때문에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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