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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알라딘]
이번에 소개할 시집은 차유오 시인의 《순수한 기쁨》이라는 시집입니다.
차유오 시인은 2020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어제를 기억하는 여덟 개의 방식> 등 시집과 책을 써냈습니다.
이 시집은 어른이 되면서 점점 사라지게 되는 '순수함'을 간직하게 해주는 시집 같았습니다.
시 소개에 앞서 시인의 말을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남는 게 마음이라면
몸 같은 건 사라져도 좋을 텐데
-2024년 11월
차유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마음이라는 것을 담은 시인의 말 같았습니다.
그다음으로 인상 깊었던 시를 몇 편 소개해 보겠습니다.
아이는 해파리를 보고 유령이냐고 물었습니다
유령의 이름을 부르면
유령이 달라붙는다고 말해주었는데요
아이는 그 말을 믿지 않고
전생에 사람이었던 유령은
해파리를 잡기 위해 물속으로 뛰어듭니다
인간을 통과해
유령이 된 유령은
이제 물속에서도 숨을 쉴 수 있으니까요
해파리에게는 유령이 보이지 않고
유령은 투명한 자신의 몸을 알지 못해
서로가 서로에게서 멀어집니다
여전히 해파리는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헤엄을 치며 물속을 돌아다닙니다
물 밖에서는
유지할 수 없는 동그란 몸으로
물로 이루어진 투명한 몸으로
혼령으로
세상을 떠도는 유령처럼
없는 것처럼 보여도
눈앞에 있는 것
비어 있는 것처럼 보여도
가득 채워져 있는 것
그건 꼭 마음 같지 않습니까
전부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둘 떠오르는 기억처럼
가라앉아 있던 해파리들이 떠오릅니다
아주 천천히 눈앞에 나타나다가
이내 사라지는
「투명한 몸」
이 시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들, 특히 마음과 기억의 존재를 '해파리'와 '유령'의 이미지로 표현하며, 이것은 우리의 마음과 기억과도 비슷하다는 것을 표현한 시 같았습니다.
그다음으로 소개할 시는
오래된 물건에서는 비린내가 난다
목이 잘린 뒤에도 목걸이를 건 귀신을 보며 생각했다
깨지기 쉬운 것을 사랑했지 깨지는 순간이 되면 온몸을 다해 조각나는 광경을 더는 손에 쥘 수 없는 작은 유리컵과 이어 붙일 수 없는 뾰족함
빽빽하게 솟은 수풀 속에 숨어 하루를 보내는 동물들과 사람의 몸을 한순간에 먹어치우는 동물들 도망가는 동물을 쫓는 사냥꾼들
지옥이란 건 몸을 가진 존재들의 공간이야
몸이 사라지면 다음도 없어
나는 속을 갈라낸다
활활 타서 사라지거나
아무것도 없는 몸 중에
하나를 택하는 방식으로
내장 속에는 전부 다 잊었다고 생각했던 기억, 소화되지 않은 슬픔, 내 것이 아니라고 믿었던 기쁨이 있다 비워 둔 내장이 구석에 쌓여 가고 내장과 내장이 쌓여 몸보다 커져 가는 것을 본다
안에 남은 게 없을 때까지
비워내고 비워낸다
무엇도 나를 인식하지 못할 때까지
「비워내기」
이 시는 내면을 담아내며, 기억과 감정의 파편들을 마주하는 과정을 깊이 있게 표현한 시 같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시는
비가 올 것 같아 몸이 쑤신 사람은 날씨에 예언하는 능력이 있다 누군가는 평생 모를 감각을 한순간에 느낄 수 있다는 뜻이다 집에서 나오면 예언했던 것처럼 비가 내리고 빗소리에 무뎌지는 귀가 있고 모든 것에 익숙해지는 시간이 온다 아무도 없는 유모차를 끄는 사람이 지나간다 누군가를 찾아다니는 것일 수도 있지만 무엇이라도 담아주고 싶어진다 오래도록 우산꽂이에 꽂혀 있던 우산 잃어버린 것은 버린 것과도 다르지 않아서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 또 다른 우산을 찾아 그곳에 숨어버리는 것 투명한 우산이 불투명해질 때까지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것 자신을 포기한 우산은 멀리 날아가고 나는 우산을 보며 괜히 힘을 빼려고 한다 날아갈 수 있다는 믿음으로 누군가 있다고 생각해 왔던 곳을 상상하면서 언제부턴가 죽은 사람을 어딘가에 살아 있을 거라 믿고 있었다 그런 믿음으로 힘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어딘가에서 내려다본 세상은 아주 작을 텐데 누가 누군지 모를 만큼 아주 작을 텐데 모든 게 거기서 거기라도 나는 거기에 있고 싶다 누군지도 모를 사람들과 함께
「모르는 일들」
이 시는 익숙함 속에서도 느껴지는 깊은 감정, 믿음, 그리고 존재의 의미에 대한 사색을 표현한 시라고 생각했습니다.
차유오 시인의 《순수한 기쁨》이라는 시집은 색다른 감정과 삶의 깊이를 전달해 주는 시집이기 때문에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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