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사진 출처: 알라딘]
이번에 소개할 시집은 이병률 시인의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이라는 시집입니다.
이병률 시인은 199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으며,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 《바람의 사생활》 등 시집과 책을 써냈습니다.
이 시집은 '사랑'에 대한 외로움과 씁쓸함을 거두고, ~했던 적을 통해 그때의 나를 입체적으로 표현한 시집 같았습니다.
시집 소개에 앞서 시인의 말을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시집 출간 제안을 받고 바로 눈 내리는 곳으로 떠났다
눈 속에 파묻혀 있었고 돌아올 날이 지나도록 눈 속에 남았다
그때 와락 스치듯 떠오른 것이 이 시집의 제목이었다
그와 동시에 눈냄새를 맡았는데 맡는 중이었음에도 눈의 냄새가 사무치게, 그리웠다
시는 그런 것
사랑은 그런 것
춤을 춰야겠다는 목적을 갖고 춤을 추는 사람과
자신도 모르게 춤을 추고 있는 사람,
굳이 밝히자면 내 이 모든 병(病)은 후자에 속한다
-2024년 4월
이병률-
창작과 사랑은 계획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고 자발적인 감정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강조해 주는 시인의 말 같았습니다.
그다음으로 인상 깊었던 시를 몇 편 소개해 보겠습니다.
미술관의 두 사람은 각자
이 방과 저 방을 저 방과 이 방을 지키는 일을 했다
사람들에게 그림을 만지지 못하게 하면서
두 사람의 거리는 좁혀졌다
자신들은 서로를 깊게 바라보다
만지고 쓰다듬는 일로 바로 넘어갔다
두 사람은 각자 담당하는 공간이 있었지만
두 사람은 꼭 잡은 손을 놓지 않은 채
나란히 공간을 옮겨 다녔다
그림이 그 두 사람을 졸졸 따라다녔다
두 사람을 그림 안으로 넣겠다고
그림이 두 사람을 따라다녔다
「어떤 그림」
이 시는 두 사람이 미술관에서 일하며 서로 가까워지고, 사랑이 싹트는 과정을 예술적이고 섬세하게 묘사해 줍니다. 두 사람의 사랑이 마치 예술 작품처럼 아름답게 그려지는 모습을 담아낸 시 같았습니다.
그다음으로 소개할 시는
사람들은 사랑을 오해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사랑을 심하게 구부러뜨리거나 질투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요
나는 사랑을 사랑하기 시작했고
개인적입니다
언제나 좋은 맛이 나는 음식을 바라지는 않아요
맛이 없거나 입에 안 맞는 음식이 나올 수도 있다는 가정하에
사랑과의 잘못은 시작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꽃을 떨어뜨린 줄기가 땅을 파고들어 열매를 맺는 것이 땅콩입니다
그것을 줄기로 치느냐 뿌리로 치느냐 관점의 차이는 있습니다
사랑은 계속해서 내 앞에서 헷갈려 하지만요
사랑이 약속 장소에 나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난 사랑을 사랑하는 것이고
사랑은 이성적으로 나를 오해하기 때문입니다
하늘로 날아오르는 기러기 떼의 숫자나 세고 돌아와도 되는 것입니다
여름이라는 계절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싫어합니다
마술사라는 직업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싫어합니다
싫어하는 것에는 없지만
좋아하는 것에는 암호가 있다고 오래전부터 뻣뻣하게 믿어 왔습니다
사랑을 감각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번 생의 암호를 풀 수 없을 텐데
어떻게 이러고 삽니까
사랑이 후방에라도 있는겁니까
「언젠가는 알게 될 모두의 것들」
이 시는 사랑은 완벽하지 않을 수 있지만, 그 속에서 의미를 찾고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시적으로 표현한 시 같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시는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
시들어 죽어가는 식물 앞에서 주책맞게도 배고파한 적
기차역에서 울어본 적
이 감정은 병이어서 조롱받는다 하더라도
그게 무슨 대수인가 싶었던 적
매일매일 햇살이 짧고 당신이 부족했던 적
이렇게 어디까지 좋아도 될까 싶어 자격을 떠올렸던 적
한 사람을 모방하고 열렬히 동의했던 적
나를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게 만들고
내가 달라질 수 있다는 믿음조차 상실한 적
마침내 당신과 떠나간 그곳에 먼저 도착해 있을
영원을 붙잡았던 적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
이 시는 사랑의 기쁨과 고통, 혼란과 열망을 통해 사랑의 본질을 담아낸 시 같았습니다.
이병률 시인의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 이 시집은 사랑의 다양한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해 주는 시집이기 때문에 추천합니다.
반응형
'시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집 소개] 《순수한 기쁨》-차유오 (0) | 2024.12.01 |
---|---|
[시집 소개] 《이걸 내 마음이라고 하자》-황인찬 (4) | 2024.11.30 |
[시집 소개]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이규리 (1) | 2024.11.20 |
[시집 소개]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이제니 (1) | 2024.11.19 |
[시집 소개] 《백장미의 창백》-신미나 (4) | 2024.11.15 |